북한이 금강산 관광비 지급을 한국 정부가 보증할 것을 요구하면서 관련 회담을 결렬시켜버린 것은 ‘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그나마 지금 금강산 관광사업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관광경비를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인데, 북한은 이것도 모자라 앞으로 현대가 지급해야 할 5억6000여만달러를 아예 한국 정부가 몽땅 책임지라는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억지는 현 정부 스스로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 정부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의 사업이며, 따라서 정경(政經)분리와 시장경제 원칙을 철저히 적용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관광객 급감으로 사업이 위기에 몰리자 스스로 세운 원칙을 뒤집고 국민 세금을 투입한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현 정부가 햇볕정책의 상징이자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사업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갈수록 무리한 요구를 내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받아내자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의 의제였던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과 육로 개통문제는 남북간에 이미 합의가 이루어져 구체적 실천만 남아 있는 상태다. 더구나 금강산 관광활성화는 북측에 현금 수입을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에도 북한은 자신들이 할 일은 미룬 채 한국 정부에 ‘현금 보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몇시간 동안이나 남측 대표들의 귀환을 차단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엄중한 사태다.

현 정부는 북측의 가당찮은 요구와 방자한 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것으로 보아 과연 현 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 미심쩍은 것이 사실이다. 임기 말에 북한에 이런저런 선심을 다 쓰고, 그 부담은 모두 다음 정부에 넘기는 일만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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