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대북) 식량차관 제공은 남·북한 사이의 첫 상거래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남·북한 사이에는 그동안 무상지원 형식만 있었으나 이번에는 차관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 계약도 남한의 한국수출입은행과 북한의 조선무역은행이 체결키로 함으로써 정상적인 국제 거래의 모습 그대로다. 이는 최근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교역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협의가 진행 중인 것과 맞물려 무역 활성화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또 장기간에 걸친 차관 형식으로 지원함으로써, 특히 북한의 남한 의존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은 거치기간을 포함한 30년 동안 차관을 갚아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대외 경제개방을 해야 할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에 ‘정상적인 상거래가 가능한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성 때문에 현금이든 현물이든 상환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자본과 기술을 가진 서방국가들이 남·북한간의 거래를 주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베를린 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성실히 실천한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도 담겨있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에서 밝힌 북한 식량문제 해결 지원, 6·15 선언 제4항의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 대한 가시적 조치라는 점이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 남북간의 현안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차관 제공은 8월 말 제2차 평양 장관급회담에서 북한측 요청으로 합의문에 포함됐다. 이 회담에서는 이산가족 생사확인, 서신교환 등도 함께 합의됐다.

따라서 남북간 비공개 접촉에서 식량차관 제공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대가’였을 가능성도 있다. 대가였다면 앞으로 북한이 남한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은 셈이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들 문제의 동시 타결은 북한에 대한 ‘압박’ 요인이 될 것 같다.

반면 식량차관과 같은 대북 지원은 우리 안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한나라당은 국회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 위기설이 퍼지면서 국민들 사이에 대북 지원 자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식량차관 제공은 남한측에도 재원(재원), 국회 동의 등 해결 과제를 남기고 있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식량차관제공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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