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국제부장 changkim@chosun.com

미국 국무부에서 핵무기와 미사일의 비확산 문제를 담당하는 존 볼턴(Bolton) 국무부 차관이 28일 서울에 왔다. 흔히 강경파로 알려진 그가 29일 한국의 정부 인사, 언론인, 학자, 재계 인사 등 100여명을 상대로 미국의 대북 정책에 관해 연설할 예정이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주목된다.

그는 한국에 오기에 앞서 26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언론인 10명과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문답의 3분의 1 가량이 북한 문제에 할애됐다. 볼턴은 요컨대, 북한의 무기 확산 활동을 미국이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미사일·핵무기·생물학무기 등에 대해 우려한다고 했다.

볼턴의 방한을 며칠 앞둔 지난 23일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은 북한의 ‘조선창광신용회사’가 예멘에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미국이 적발했다고 밝히면서 향후 미사일이나 전자·우주·항공에 관련된 제품과 기술의 대(對)북한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바로 그날,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의 연결 문제가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지만, 과연 그랬을까 싶다. 철도 연결은 새삼 제기된 의제도 아니고, 또 반드시 정상들이 만나서 해결해야만 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보다는 역시 양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작년 여름에 이어 1년 만에 또 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북한은 경제 문제 외에 안보 걱정을 하는 것같고, 그것을 러시아와 논의하고 싶을 것이다. 냉전이 끝난 이후 러시아도 한반도 문제에 관한 발언권이 미약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으므로 이럴 때 북한의 ‘후견인’ 비슷하게 나서보는 것도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나쁠 게 없다.

그렇다면 북한은 정녕 미국의 군사 공격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럴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6·25 남침 이래 반세기 동안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으로만 존재해 왔던 북한은 몇년 전부터는 중·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 시도로 그 위협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일본이 신경을 쓰고 있음은 물론, 이제는 미국까지도 북한의 사정권 안에 들어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우려의 대상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이 정말로 미국의 군사공격을 심각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국의 북한 공격은 러시아나 중국이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전쟁의 피해를 크게 겪을 남한 사람들이 강력히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대외적 과제의 우선순위에 있어 북한 문제는 이라크만큼 중대하지도, 시급하지도 않다.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이지만, 볼턴 차관은 26일 일본 언론인들과의 대화에서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를 친 다음에는 자신들이 피해를 당할까 걱정하고 있다’는 질문을 받고 순간적으로 “이라크에 북한인들이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의 머릿속에 북한 공격 시나리오는 없음을 보여준 대목이 아니었을까.

만일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 문제는 능히 북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북한이 백성을 살리고 정권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한과 미국 등 외부 세계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세계에 천명된 일이고, 미국 지도부의 머리 속에도 아직 북한은 ‘그런 정도’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무기 확산을 중단하고 휴전선에 인접한 재래식 무기의 위협을 줄이는 것이다. 남한이 북한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아야만 남북한 사이의 진정한 협력이 시작되고, 세계가 그들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아야만 북한의 안보가 확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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