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장·전 유엔대사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엔 인권소위원회(7.28~8.16)는 「난민의 국제적 보호」라는 의제하에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유엔의 인권기구가 탈북자 문제에 대하여 결의형식으로 작년에 이어 공식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은 실로 그 의의가 크다. 올해 인권위 토의과정에서 중국과 북한 대표는 중국에는 ‘탈북자’가 없고 오직 ‘경제적 유민’만이 있을 뿐이므로 1951년도 난민협약상의 피난민은 없다는 반론을 제기했고, 특히 북한대표는 탈북자 문제가 한국 정부의 조작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전 인권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이런 가운데 26일에는 급기야 중국 베이징의 외교부 건물 입구에서 탈북자 7명이 난민지위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중국 공안에 연행되는 사태가 발생,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 유엔 인권소위 결의의 특징은 첫째,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본국 송환에 반대하는 사람을 강제송환함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 둘째, 정치적 망명자나 난민의 구금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특히 18세 미만 아동의 구금은 불법이라는 점, 셋째, 난민접수국은 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보호능력과 시설을 갖추기 위하여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과 협력하고 또 판무관에게 난민과의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난민의 지위결정을 촉진토록 한다는 점 등이다.

결의가 작년과 크게 다른 것은 난민(refugee)의 개념보다 훨씬 넓은 개념인 모든 사람 의 강제송환을 금지하는 것이 국제법, 특히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에 비추어 국가들이 지켜야 할 의무라는 점을 강조한 점이다.

금번 인권소위원회에서 탈북자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중국에 은거하고 있는 탈북자는 세계 도처에 있는 2000여만명의 난민과는 달리 유엔의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보호받고 있지 못하는 집단으로서 본국 또는 거주국으로부터의 체포, 구금, 강제송환의 악순환 속에서 기본적 생존권마저 위협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비극은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한반도의 안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탈북자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해결할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으나 북한이 사실상 그 책임을 포기한 이상 한국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탈북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보호의 책임을 북한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탈북자 문제가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기본적인 인권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하위권으로 밀려났고 햇볕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간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나 유엔기구와 일관된 정책에 입각하여 문제해결에 나설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과거 수년간 지속되어온 탈북자의 참상에 대해 국제적 관심이 모아졌고 국내외 NGO와 종교단체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왔으나 우리 정부의 역할은 극히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유명한 홈즈 대법관은 “한 사람의 생명은 지구처럼 무겁다”는 잠언을 남겼다.
이제 우리 정부도 중국과의 양자협의에서 탈북자의 인권과 생존권 문제를 정식 의제로 제기하고 그들의 중국 내 존재를 인정받도록 함과 동시에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개입이 용인되도록 협상에 나설 때다. 탈북자 문제는 결코 중국과 북한간의 국경의정서에 의하여 처리될 문제가 아닌 인간의 생존권과 기본인권의 문제임을 이번 유엔인권소위 결의가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인간 안보와 ‘개인 주권’의 중요성이 계속 높아질 시대이다. 오늘날 국제 인권법은 모든 다른 법에 우선하고 있음은 피할 수 없는 국제적 추세이므로 중국과 북한에게도 이 점을 분명히 하면서 북한 인권문제를 과감히 제기할 시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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