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이 마련한 올해 3·1절 특집 중엔 세월에 묻혀 잊혀질 뻔한 인물과 사건을 되살려낸 다큐멘터리들이 눈길을 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사회과학원 소속 역사학자 강용권. 이름조차 생소한 이 사람을 KBS는 3·1절 특집으로 올렸다. KBS 1TV 29일 밤10시 ‘강용권의 4만리 장정-자전거로 쓴 독립군 이야기’. 강씨는 91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동북 3성 항일운동 유적지를 자전거로 답사했다. 답사길에 만난 수백명의 증언자로부터 채집한 인터뷰 자료만 테이프 700개. 답사를 위해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1만4000km에 달한다. 만주 일대 항일투쟁사를 증언할 방대한 1차 자료를 수집한 대가로 그는 목숨을 내놓았다. 97년 3차 답사 도중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쉰다섯 나이였다. 강씨의 답사길을 그의 딸 봉화와 함께 되밟는 내용이다.

1TV는 또 3월1일 밤 10시 ‘안중근과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내보낸다. 1985년 명동성당 지하 자료실에서 발견된 뮈텔 주교의 일기장과 조선교구 통신문을 토대로 천주교와 독립운동이 갈등을 빚었던 사실을 들춰낸다.

MBC는 한일 관계 암흑기인 일제시대 때 조선인의 친구로 일생을 바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츠지(포시 신치)를 발굴해냈다. 29일 밤 10시55분 방송하는 ‘PD수첩-일본인 쉰들러, 후세 다츠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재일 조선인이 곳곳에서 학살당할 때 후세씨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일본 경찰이 날조했다고 주장하며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죄문을 발표했다.

3·1운동 당시에는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했고,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지지 활동을 하다가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1919년 도쿄에서 2·8독립선언을 한 ‘조선청소년독립단’ 재판에서 변호를 자청하면서 조선과 인연을 맺은 그는 5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선인의 변호사’로 불렸다.

MBC는 3월1일 오전11시 열혈 독립운동가 박열을 재평가하는 특집도 마련했다. 박열은 1923년 일본 왕실을 폭살하려고 폭탄을 밀반입하다 발각돼 사형선고를 받고 22년2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6·25 때 납북, 북한에서 요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남쪽에선 불순한 아나키스트로 폄하당했다. 박열과 반제국주의 투쟁을 함께 한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는 주검까지 문경에 묻혀있으나 무관심 속에 방치돼왔다. 일본에서 새로 전개되고 있는 가네코 재평가 작업도 소개한다.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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