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 결정으로 북한 국기(人共旗)와 국가(북한 ‘애국가’) 사용의 허용 여부와 허용할 경우의 범위가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국제체육대회의 일반적 관례, 남북관계의 현실과 미래, 국가보안법 같은 실정법(實定法) 규정,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 인공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국민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대단히 미묘한 사안으로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해 결정할 일이 아니다.

현 정부가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적극적으로 요구해 왔고, 경비까지 우리가 부담하는 마당에 그들의 국기와 국가를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도 앞뒤가 맞지 않으며,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다만 현 정부가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 사전에 깊은 고려나 국민적 논의 없이 우선 북한의 참가부터 성사시켜 놓고 보자는 식으로 질주한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기와 북한 애국가를 다른 참가국들과 마찬가지로 시상식에서뿐 아니라 응원석이나 경기장 주변, 길거리에서 무제한으로 사용하게 허용할 경우 우리 국민들이 느껴야 할 혼란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북에서는 수백명의 응원단까지 보내겠다고 통보해 온 상태다. 이 경우 순수한 스포츠행사가 정치 선동·선전장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없지 않고, 남북 또는 남남(南南)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실정법상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예컨대 경기장 안팎뿐 아니라 대도시 광장들에서 수많은 인공기를 흔들고 북한 애국가를 열렬히 고창하는 집단행동을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 모든 경우들을 미리 상정해 일일이 규정으로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실효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아시안게임까지 남은 기간에 정부는 이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국민여론을 경청해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북측과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국민정서 등을 감안해 북한 국기·국가 사용의 의미와 범위를 가능한 한 절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북한도 여기에 협조해야 한다. 차제에 남북이 국가상징물 사용에 관한 상호주의 원칙도 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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