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아인혼
/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고문·전(前) 국무부 차관보

북한이 서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보낸 메시지는 한국 정부가 요구한 사과라고 간주하는 것이 충분한지에 관한 격렬한 논쟁을 한국 내에서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한국은 그 문제에 너무 사로잡히기보다는 관심의 초점을 북한 메시지의 훨씬 더 중요한 두 번째 부분, 즉 “미래에 그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촉구한 대목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북한 김령성이 지난 25일 보낸 메시지는 진정한 사과였는가? 아니면 서해교전으로 야기된 북한의 도발적 이미지를 지우고 외부 지원을 계속 받아들이기 위해 계획된 전술인가? 현재로서는 이 물음에 대해 마치 북한측의 이번 공격이 누구의 책임이었는가, 함포 발사를 시작한 북측 경비정장이었는가 아니면 평양의 지도부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문제만큼이나 정답을 알 수 없다.

북한측 메시지의 진지성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북한이 미래의 충돌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길을 모색함에 있어서 한국과 협력하겠다는 제안에 스스로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느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정말 진지한지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제안한 남북대화의 재개, 즉 8월 초의 실무 접촉과 그 후의 장관급 회담을 스스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단순히 서해교전이 있기 이전, 그리고 임동원(林東源) 특사의 평양 방문 이후에 남북간에 설정된 의제들로 되돌아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임 특보의 방문으로 4월 5일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제시된 의제들 가운데는 남북한 간 철도와 도로의 연결, 개성 공단 건설, 임진강 홍수 통제, 금강산 관광 증진, 이산가족 재회, 경제협력을 위한 고위 회담, 국방장관 접촉 재개 등이 들어있었다.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안 된다.

남한과 북한은 안보문제, 특히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 조치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과 1999년의 서해교전을 볼 때 남북은 앞으로 그 같은 충돌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해상 ‘통항 규칙’ 같은 것에 특별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에 훨씬 중점을 둔 반면, 북한은 그 같은 안보 조치를 꺼리면서 대신 그들의 절박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인도적 협력을 선호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더라도 긴장과 불안의 잠재적 요인들을 외면하는 남북한 사이의 불균형된 의제는 결국 북한 자신에 손해가 될 뿐이다. 상호 신뢰와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한 군사적 조치 없이는 앞으로도 또 충돌이 일어날 것이며, 그 결과로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남북 협력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이번 6·29 서해교전의 결과도 남한으로 하여금 대북 식량지원을 중단하게 했다. 안보 문제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진행되는 남북 관계는 특히 남한에서 정치적으로 지속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국은 북한이 최근의 제안(대화 재개 제의)을 따르도록 요구해야 한다. 한국은 4월 5일 공동성명에서 제시된 남북한 간 대화들을 재개하는 것에 더하여, 6·29 서해교전과 같은 사건을 피하고 만일에 그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경우에도 대규모 교전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신뢰구축 조치들을 마련하기 위한 대화에 북한이 나서도록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남북대화를 재개하자는 북한측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스스로 문제를 일으켜 놓고 그걸 해결하겠다는 것일 뿐인 북한에 오히려 상을 주는 격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화 재개가 북한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 대화 재개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들이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실천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더욱 만족스러운 사과를 할 때까지 그들과의 대화 재개를 미루는 것은 결과적으로 남북 사이의 교착상태를 연장시키고 한국의 오랜 관심사들을 추구할 기회를 흘려보내는 것일 뿐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북한은 최근 남북한 관계의 교착을 극복할 수 있는 의미있는 조치를 취했다. 한국은 이제 단순히 서해교전 이전의 남북관계로 되돌아가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대처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차제에 북한의 의도를 시험하고, 한반도의 안정을 강화하면서 남한의 안보 증진에 도움이 되도록 남북 대화 의제를 확장하는 데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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