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서해교전 사태와 관련해 우리 측에 보내온 ‘유감 표명’은 사과라고 보기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남북장관급 회담 북측 단장 명의의 전화통지문에서 서해교전을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이라고 규정하고, ‘북남 쌍방’이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기습적인 선제 군사공격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해군당국의 조사로 충분히 드러났음에도 북측은 ‘우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재발방지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유감 표명의 주체가 북한 내각 인물인 점도 적절치가 않다. 북한 군사도발의 책임은 군부이고, 군부는 내각과 엄격히 구별돼고 있는 것이 북한 체제다.

이처럼 도저히 사과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해교전을 ‘남북 공동의 책임’으로 호도하고 있는 듯한 북측의 전화통지문에 대해 현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고 나선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것을 서해교전에 대한 “북측의 명백한 사과와 유감 표명”(통일부 차관)으로 받아들이는지를 국민 앞에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북한의 의도는 서해교전 사태를 어물쩍 넘기고 남측으로부터 식량지원 등을 받아내려는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최근의 배급식량 가격 대폭 인상 등으로 북한으로서는 식량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현 정부가 자신들의 체면과 입장을 살리는 데만 급급해 북한의 ‘얼버무린 수사학’ 하나로 서해교전을 없던 일로 넘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태 재발을 부를 수도 있는 우려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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