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0년대 이후 사실상 붕괴상태였던 식량배급제를 지난 7월 1일부터 폐지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배급제는 평양시민과 일부 특권층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이제 북한당국이 그나마도 지탱할 여력을 상실하고 공식 포기를 주민들에게 선언하기에 이른 형국이다.

배급제 포기로 모든 북한주민들은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들을 장마당(비공식 시장) 가격으로 구입해야 한다. 쌀의 경우 배급가격은 1㎏에 10전(북한 돈) 안팎으로 거의 무상이었으나, 장마당에서는 40~100원에 달한다. 물가 현실화에 따라 100원 정도이던 근로자들의 평균월급도 2000~3000원으로 대폭 인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화폐개혁과 공식환율의 현실화도 착수했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북한당국의 능동적인 개혁의지의 발로라기보다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북한사회의 ‘지하시장경제’ 구조를 더이상 국가영역 바깥에 방치해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책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체제유지의 근간이 돼온 배급제도가 공식 폐기됐다는 사실은 어쨌든 북한주민들의 경제생활과 사고방식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번 조치가 북한 경제회생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북한당국이 후속조치로 국가재정과 예산제도 혁신, 농업분야 구조개혁, 개별기업 독자성 확대, 대외무역 제도개선 등을 추진해 나갈지 여부를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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