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서해교전에서 침몰한 해군경비정 인양작업에 관한 구체적 사항들을 사전에 통보하라고 우리측에 요구하고 나선 것은 우리 군(軍)과 국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행위다. 우리 해군이 즉각 북한의 요구를 일축하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의 경비정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군의 기습 선제공격을 받아 우리 해역에 침몰해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느닷없는 공격으로 많은 장병들을 사상(死傷)케 한 데 대해 깊이 사죄를 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북한은 ‘새로운 충돌’을 막으려면 인양작업의 세부내용을 사전통보해야 한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자명하다. 북방한계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 데 이어 계속 심리적으로 남쪽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경비정이 침몰한 해역이 자신들의 ‘군사통제수역’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지난 99년 ‘연평 해전’ 후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역으로, 당시 인민군총참모부는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자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선언해 서해도발을 예고하는 듯했다. 이번에 성명을 낸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도 군사정전위원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북한이 자의적으로 만든 기구일 뿐이다.

차제에 현 정부는 서해도발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이 북한의 막무가내식 언동(言動)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한다. 앞으로도 만에 하나 현 정부가 북한의 이런 주장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곧 북한의 ‘군사통제수역’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북방한계선 문제를 협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이런 적반하장(賊反荷杖)식 주장을 즉각 중단하고 우선 서해도발부터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