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학

현재 우리 군(軍)은 사면초가에 있다. 화해와 협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북정책으로 인해 영해를 침범한 북한군에 얻어맞고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는 참담한 꼴이 됐다. 군은 평시가 아닌 돌발적 전시상황에서 최대한의 전력으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평소 고된 훈련을 감내한다.

김정일은 툭하면 군부가 말을 듣지 않아 남북교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고 구실을 댄다. 당과 김정일 보위를 외치는 군대가 당과 국방위원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체제 특성상 이해하기 어려운 핑계다. 우리는 “군대가 말을 듣지 않아서”라는 것을 내세워 대북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대북협상 과정에서 군의 사기와 소명의식을 고려한 배려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한 적이 있는가. 북측 대표가 “대통령의 군대가 왜 말을 듣지 않느냐”고 힐문해도 묵묵부답 했던 결과가 오늘의 이 꼴을 낳고 말았다.

중무장의 살상무기를 놓고 대치한 상태에서 적이 먼저 쏘기 전에는 절대로 쏘아서는 안 된다는 존 웨인식 교전규칙을 숙지하면서, 이겨도 돌아올 ‘정치적 문책’을 생각해야 하는 군대가 지구상에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초전에 박살낼 수 있는 군대가 존재할 수 있는지 정말 한심스럽다. 이것이 ‘대한국군’에 안겨진 숙명이다.

남북관계 특성상 군의 본분을 강하게 내세우면 정부의 햇볕정책에 위배된다고 해서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주적론’의 공방 속에서도 군의 자긍심을 챙겨주는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NLL은 우리 영해가 아니며 유엔사령부가 남측의 군사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군사 내규이므로 공동어로구역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면 그동안 한 뼘의 바다를 더 지키기 위해 젊은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은 모두 개죽음을 했다는 말인가. 정치인들이 재빨리 NLL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잘못으로 덧없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워왔단 말인가.

민주화 바람이 불어닥치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국가는 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알아서 기던가 적당히 적응하라는 정도로 ‘방치’하고 있다. 과거 정치군인들의 업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할 정도로 내던져 놓고 있다.

군 훈련장 이전과 주둔지 감축을 요구하는 지역주민의 요구를 국방부나 단위부대 차원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 선거와 세수(稅收) 확대를 위해 동조하고 있는 지자체의 압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문제와 관련한 NGO들의 강도 높은 감시와 비난 또한 여간 따갑지 않다.

그만큼 군을 둘러싼 국내환경이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국가차원의 새로운 개념의 국방정책이 시급하다.

군 스스로 풀 수 없는 차원의 국가관리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직시하여 GDP 대비 세계평균(3.8%)에도 못 미치는 국방비(2.8%)를 재산출해서 적정수준으로 확보해 줘야 한다. 또 병영 안팎의 삶의 질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군의 명예와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6·29 서해교전을 계기로 우리 군을 제대로 들여다 봐야 한다. 그리고 꺾여진 군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군사력 평가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군의 사기다. 아무리 장비가 최신식이고 숫자가 많아도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힘을 쓸 수 없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오랜만에 분단과 이산의 고통으로, 약소국의 콤플렉스로 찌들고 기죽어 있던 가슴을 활짝 젖히는 그런 희열을 느끼고 있다. 이런 희열과 기쁨을 국가안보 핵심인 군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열정으로 힘껏 밀어줘야 한다.

우리 국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수 있도록 마음의 성원을 보내줘야 한다. 우리 군도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힘껏 격려해 줘야 한다. 우리 모두 큰 소리로 ‘대~한국군’ 하며 힘찬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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