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연평부대 예하 포병6중대에서 K-9자주포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한 병사가 훈련상황에서 대응 사격 지시를 받고 장약(교보재)을 옮기고 있다. 연평도에는 K-9자주포 18문이 있지만 실사격 훈련을 해본 포는 6문에 불과하다./해병대 제공
해병대 연평부대 예하 포병6중대에서 K-9자주포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한 병사가 훈련상황에서 대응 사격 지시를 받고 장약(교보재)을 옮기고 있다. 연평도에는 K-9자주포 18문이 있지만 실사격 훈련을 해본 포는 6문에 불과하다./해병대 제공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120㎞가량 떨어져 있는 연평도는 북한을 향한 비수 같은 위치에 있는 최전선이다. 연평도 북쪽 긴작시해안에 도착하니 약 12㎞밖에 있는 북한 개머리해안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서정우 하사 등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북한 해안포가 불을 뿜은 곳이다. 북한이 9·19 군사 합의를 일방 파기한 이후 해안포 포문을 열어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해 수호의 날(22일)을 앞두고 최근 찾은 해병대 연평부대는 지난 1월 북한의 NLL 일대 해안포 사격, 지난 2월 김정은의 ‘백령도·연평도 해상 국경선’ 발언 등으로 바짝 날이 서있는 상태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한이 대규모 도발을 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70㎞ 밖까지의 적 포격을 탐지할 수 있는 대포병탐지레이더는 북을 향해 24시간 가동 중이었다. 이 레이더는 지난 1월 5일 북의 해안포 200발 사격 도발 당시 NLL 일대에 떨어진 약 30개 포탄 궤적을 정확히 포착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서해 수호의 날을 맞아 장병 특별 정신교육 등을 실시하며 적의 무력 도발에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이인영 해병대 연평부대장(대령)은 “적이 우리 영토 내에 도발 시 K-9 자주포로 5분 안에 원점 타격을 할 수 있도록 ‘선조치 후보고’를 강조하고 있다”며 “’창끝’에서 빠른 결심을 해야 한다. 정무적이나 정치적인 부분은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동이 트기 전인 이른 아침 연평도 경계 작전을 담당하고 있는 90대대의 김종필 작전과장(소령)과 함께 긴작시 일대 해안 철책을 둘러봤다. 초소에는 적 병력을 제압하기 위한 K-6 중기관총이 배치돼 있었고, 해안을 따라서는 적 상륙정 진입을 막는 용치(龍齒)가 빼곡하게 배치돼 있었다.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인원들과 별개로 일출 시각에 맞춰 해병대원은 철책을 따라 순찰에 나섰다. 평평하다는 뜻에서 ‘연이어 뻗친(延) 땅(坪)’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멀리 배에서 보면 기차같이 평평하다며 ‘기차섬’이라고 하지만 해안 절벽을 따라가는 철책로는 설악산 공룡능선처럼 가팔랐다. 김 소령은 “이 길이 가장 고저 차가 작은 길”이라고 했다. 강한 바닷바람에 철책이 흔들리며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약국 하나 없는 연평도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종필 소령(연평부대 예하부대 대대 작전과장) 가족 모습. /해병대 제공
약국 하나 없는 연평도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종필 소령(연평부대 예하부대 대대 작전과장) 가족 모습. /해병대 제공

연평부대에는 K-9 자주포 18문이 배치돼 있다. 지난 1월 북한이 해안포 도발을 감행했을 당시 포7중대는 대응 사격 훈련에 나서 K-9 30발 실사격 훈련을 했다. 2017년 8월 이후 연평도에서 K-9 실사격이 중단된 이후 6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김희수 포9대대장은 “진지에서 실사격을 해보면 눈빛부터 달라진다”며 “마음 같아서는 한 달에 한 번은 포 실사격 훈련을 했으면 좋겠다”며 포진지에 있는 실탄을 가리켰다. 눈대중으로도 수백 발에 달하는 실탄이 쌓여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非)사격 훈련을 하고 있지만 포성도 포 반동도 없는 훈련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대응 사격 훈련 당시 일부 K-9 자주포에서는 우발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소총에 기능 고장이 생기면 응급 조치를 한 뒤 발사하는 것처럼 실사격 훈련을 해야 비상 상황 대응 능력이 올라간다. 현재 연평도의 K-9 운용 포병중대 3개 중 포7중대를 제외한 병력들은 연평도에서 실사격을 해본 경험이 없다.

지난 1월 포7중대 전포대장으로 대응 사격에 참여했던 이제민 중위는 직후 장기 신청을 했다. 이 중위는 “중학생 때부터 해병을 꿈꿔 ROTC로 임관했는데 정작 연평도에 오니 장기 지원할 생각이 사라졌었다”고 했다. 사회에서 단절된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인한 부대 적응 문제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도발과 이로 인한 대응 사격을 한 후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적 도발 덕분에 나의 존재 이유를 알았다”며 “K-9 자주포가 전포대장인 내 지시에 맞춰 사격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수없이 시행해 온 훈련의 효용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대연평도까지는 쾌속선으로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민간 병원과 의사가 없어 섬 안에는 약국이 한 곳도 없다. 바닷물을 정수해서 쓰는데 염분과 노후화된 수도로 수질은 극히 나쁘다. 연평부대 예하 부대의 샤워장에는 필터가 2개씩 달려있었다. 그래도 부식이 심해 샤워장은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 그런 물도 때때로 끊겨 식사를 준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연평부대를 찾은 날도 그랬다. 흔한 커피·치킨 프랜차이즈 단 한 곳이 없다. 전기 공급도 불안정해 군 관사의 경우 절전으로 냉장고에 보관해 둔 음식이 모두 썩어버리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동 트는 새벽 연평도 해안 순찰을 하고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 90대대 병력들. /해병대
동 트는 새벽 연평도 해안 순찰을 하고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 90대대 병력들. /해병대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기혼 간부 180여 명 중 55명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아내와 6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종필 소령은 “한반도에서 위기감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말 그대로 ‘내 가족을 지킨다’고 생각한다”며 “아들도 아빠가 멋있다고 할 때 힘이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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