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6일 쿠바 혁명 기념식. 왼쪽부터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대통령./쿠바 대통령실
2022년 7월 26일 쿠바 혁명 기념식. 왼쪽부터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대통령./쿠바 대통령실

대통령실은 15일 ‘북한 형제국’ 쿠바와 수교한 데 대해 “이번 수교는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의 우호 국가였던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했다. 1988년 8월 당시 공산권이던 헝가리에 상주 대표부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추진된 북방 외교가 30여 년 만에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자 북한도 일본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한 접촉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이날 담화를 내고 “일본이 악습을 털어버리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북한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 일본의 외교 접촉을 파악하고,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노동신문 뉴스1
북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노동신문 뉴스1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이번 쿠바와의 수교는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또 그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쿠바와의 수교를 위해 지속적으로 물밑 작업을 진행해 왔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외교부 장관이 쿠바 측 고위 인사와 세 번 접촉했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수교와 관련해 “우리는 자국 외교 관계의 성격을 결정할 수 있는 한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며 “한미 동맹은 철통같이 굳건하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환영’의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쿠바가 미국의 적대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그래픽=양진경

정부는 북한의 방해 공작 등을 우려해 극비리에 수교 협상을 추진했다. 협상은 설 연휴 직전, 쿠바 측이 적극적인 의사를 표하면서 급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휴가 끝난 지난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선 예정에 없던 ‘즉석 안건’으로 쿠바와의 수교안이 상정됐다. 이 안건은 다른 안건들과 달리 국무위원들의 PC 모니터에는 나오지 않았고, 종이 인쇄본으로만 배포됐다가 회의 후 수거됐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제외한 다른 국무위원들은 그제야 수교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14일 오전 8시(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한국과 쿠바 유엔 대사를 포함한 극소수 외교 관계자가 만났다. 양측 관계자들은 수교를 위한 공식 문서를 교환하고 악수를 했다. 5분 뒤 한국 대표부는 ‘한·쿠바 외교 관계 수립’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양국은 보도자료 배포의 ‘분’까지 미리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방해 공작을 감안한 조치였다. 양국은 관련 사진도 외부에 배포하지 않았다.

일러스트=양진경
일러스트=양진경

우리 정부가 쿠바와 수교 협상을 하는 동안 북한도 일본과의 외교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9일 일본 중의원에서 “작금의 북·일 관계 현상에 비춰 봐 대담하게 현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양국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로선 낮은 지지율을 올릴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고, 북한도 국제적 고립을 피할 결정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방북이 성사되거나 일본과 북한이 실제로 수교로 이어지기엔 걸림돌이 많다는 평가다. 김여정은 이날 담화문에서 “일본이 우리의 정당 방위권에 대하여 부당하게 걸고 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장애물로 삼지 않으면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일 수교의 최대 쟁점인 ‘납치 문제’와 ‘북핵’에 있어서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그러나 지난달 일본 노토(能登)반도 지진에 대해 북한 김정은이 전례 없는 위로 전문을 보내며 기시다 총리를 이례적으로 ‘각하’로 호칭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수교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외교적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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