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 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유세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 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유세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 한 달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경선 유세장을 빠지지 않고 찾았다. 연설에서 그가 잊지 않고 매번 꺼내 드는 주제 중 하나는 북한 김정은이었다. ‘스트롱맨(철권 독재자)’ 친구들인 푸틴과 시진핑을 호명하지 않는 날에도 “똑똑하고 터프한 친구(김정은)가 나를 좋아해 4년간 북한이 잠잠했다”고 자랑했다. 유세 현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엔 판문점에서 만난 트럼프와 김정은이 악수하는 모습이 한참 동안 재생됐다.

트럼프 지지 유세에 나선 측근들도 그를 호출했다.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를 방문했더니 김정은이 미사일 도발을 멈췄다”고 했다. 트럼프 진영이 묘사하는 김정은은 유독 수동적이다. 트럼프의 리더십 덕분에 김정은이 고분고분하게 협상장에 나왔다는 식이었다.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만이 김정은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유세마다 트럼프·김정은의 ‘브로맨스’가 흘러나오는데도, 고조되는 북핵(北核) 위협이 언급되지 않은 건 아이러니였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최근 ‘전쟁’ 운운하면서 대남 도발 수위를 높이는 데 대해선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북의 핵 미사일이 이젠 미 본토를 본격적으로 겨누는데도 지지자들은 김정은을 지칭하는 ‘로켓맨’과 같은 단어가 나오자 히히덕거렸다. 한미 조야에서 ‘김정은이 전쟁을 결심했느냐’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을 트럼프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뤄지지도 않은 김정은과의 ‘평화 회담’을 치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임기 전후로 북의 핵·미사일이 더욱 고도화된 현실을 외면하려니 스텝이 꼬인다.

트럼프는 얼마 전 자신이 북핵 폐기를 포기하고 ‘핵 동결’을 통해 대북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미 언론 보도가 나오자 즉각 ‘가짜 뉴스’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트럼프를 잘 아는 한 전직 관료는 “그에게 구체적인 대북 정책, 원칙 같은 걸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국내외 정치에 이득이 되는 상황이라면 언제든 핵 동결 등 모든 옵션을 포함한 북한과의 ‘위험한 거래’를 재개할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 1기 미·북 회담 때 몸이 달았던 그를 막판에 제지했던 건 ‘북핵 폐기’라는 원칙을 잊지 않았던 관료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북한을 잘 아는 노련한 관료들 상당수가 백악관 문턱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북한의 ‘비핵화 쇼’를 막기 위해 눈을 부릅떴던 대북 전문가들 상당수가 ‘충성심(loyalty)’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차기 내각 리스트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가 워싱턴 정가에서 파다하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그의 충동적인 결정에 ‘노’라며 제어할 수 있는 참모는 더욱 찾기 힘들어질 거란 얘기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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