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들. /연합뉴스
북한 여성들. /연합뉴스

가부장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서 최근 여성의 가정 내 지위가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가 지난 10여 년간 축적된 북한이탈주민 대상 심층조사 결과를 종합해 6일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선 여성이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가정 내 지위가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배급제가 세대주인 남편을 기준으로 이뤄져 남성의 가정 내 지위가 높았지만, 배급제가 작동하지 않는 현재 북한 상황에서는 남편의 위상이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탈북한 한 여성은 심층인터뷰에서 “남편들이 배급을 타 오고 노임을 타왔으니까 그때는 남편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남편들 보고 ‘멍멍개’, ‘낮전등’이라고 한다”며 “여성들이 돈을 버니 힘이 많이 세졌다”고 했다. 낮전등은 낮에 켜진 전등처럼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같은 해 탈북한 또 다른 여성도 “여자가 나가서 벌어서 그걸로 가정 유지하니까 남자들이 여자 말을 듣게 되고 여자가 벌어서 가정을 부양하니까 남편한테 큰 소리 나가게 되고 남편들은 권한이 없어졌다”며 “남편들은 울며 겨자 먹기다. 할 수 없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당연히 여자들의 권한이 높고 소리가 높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보고서는 “가정 내 젠더 평등 정도가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공적영역에서의 젠더화된 위계 문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북한) 여성들은 가부장적 문화에서 남성보다 열등한 위치에 내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사회 전반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사회인식의 변화로 이혼이 늘고 있지만 법적인 수준에서 이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혼 경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북한은 이혼을 사회주의 도덕관과 배치되는 비사회주의 행위이자 자본주의 국가 특유의 사회 병폐로 간주하는데 재판이혼만 허용하고 법적으로도 이혼 가능사유와 대상을 극히 제한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이혼 시 지방 추방, 자녀 대학입학 제한, 당원권 박탈 등 법적 처벌과 불이익 부과로 억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와 같은 과잉 통제는 형식적 결혼 상태를 강요함으로써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당국 차원의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되어, 주민들이 공식직장에서 임금이나 배급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며 전력·원자재 부족으로 기업소 가동이 어려움을 겪는 등 국영경제가 실패한 가운데,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의식주와 생계·의료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보고서는 권력층의 주민 수탈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김정은 집권 이후 뇌물 공여 경험이 2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부정부패가 만연한 상황이라며 정권에 대한 주민 불만이 누적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의식 또한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특히, ‘3대 세습’, ‘백두혈통 세습’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당국의 거센 단속 속에서도 외국 영상물 시청 등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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