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광진구 블라인드아트홀 소극장에서 만난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하늘(30·가명)씨. /장련성 기자
21일 서울 광진구 블라인드아트홀 소극장에서 만난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하늘(30·가명)씨. /장련성 기자

탈북자 정하늘(30·가명)씨는 청소년 시절 북한에서 축구 선수였다고 한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처럼 되고 싶었다. 군 입대로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한 정씨는 탈북 후 영화감독이 됐다. 그가 제작한 영화 ‘두 병사’가 21일 유튜브를 통해 개봉했다.

정씨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부는 주민들을 위해 체제를 개혁할 의지가 없고 달리 하는 일도 없다”며 “그러다 보니 쌓인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벌이는 게 대남 도발”이라고 했다. 정씨가 만든 영화에는 이런 북한 지도부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 부조리를 당하는 일선 병사의 이야기가 담겼다.

영화 ‘두 병사’는 북한 최전방 지대 주둔 군인 3명이 주요 출연자다. 셋은 어릴 적 친구였지만, 군인으로 복무하며 계급이 나뉜다. 엘리트 집안 출신은 간부, 중산층 집안과 노동자 집안 출신은 병사가 된다. 간부는 친구였던 노동자 집안 출신 병사에게 가혹 행위를 한다. 중산층 집안 출신 병사는 이를 방관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정씨는 “이들은 한 사회에 살지만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해 한 화면에 담는 것을 피했다”며 “그래서 제목도 ‘세 병사’가 아니라 ‘두 병사’로 지었다”고 했다. 24분 분량의 이 영화는 국민통일방송의 예산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는 정씨의 북한군 경험이 투영됐다. 정씨가 탈북한 건 입대 1년 만인 2012년 8월이었다. 태풍 때문에 철책이 쓰러진 틈을 타 휴전선을 넘어 한국에 왔다고 한다. 짧은 거리지만, 야음을 틈타 은밀히 움직였기 때문에 18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정씨가 탈북을 결심한 건 3개월여 전부터였다. 북한 강원도 지역 부대에 배치됐는데, 매일 선임의 욕설과 구타에 시달렸다고 한다. 정씨는 “10년의 복무 기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며 “군 내에선 2012년 4월이 되면 무력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때까지만 참아보려 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정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마라도나의 위인전을 읽고 축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지만, 정씨는 체육중고등학교에 진학해 청소년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마라도나는 170cm가 되지 않는 키에 빈민가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며 “세계 무대에서 뛰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싶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축구부에 가입했지만 결국 군 입대와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하게 됐다”고 했다. 정씨는 “북한에서 축구 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한국에서는 봉준호 감독 같은 영화감독으로 꼭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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