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산하 중앙교육연수원이 지난달 교사 대상으로 진행한 다문화 연수에서 출제한 문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해야 할 행동으로 옳지 않은 것’을 묻고 정답은 ‘북한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제시했다. /인터넷 화면
교육부 산하 중앙교육연수원이 지난달 교사 대상으로 진행한 다문화 연수에서 출제한 문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해야 할 행동으로 옳지 않은 것’을 묻고 정답은 ‘북한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제시했다. /인터넷 화면

현직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작년 12월 교원 법정 연수를 받다가 황당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통일 시대 대한민국’이란 주제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는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행동으로 옳지 않은 것은?”이란 질문의 문제를 받았다. 그런데 정답이 “북한 체제에 대한 적극적 비판”이었다. A 교사는 21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북한 체제를 비판해선 안 된다는 것이 어떻게 정답일 수 있는지 기가 찼다”며 “이런 문제와 답이 교원 의무 연수 시험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더 어이없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옳은 보기로는 ‘남·북의 평화적 교류와 협력 지속’ ‘스포츠 대회 단일 팀 구성을 통한 협력’ ‘지속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제시됐다.

해당 문제는 교사와 교육 공무원이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다문화 관련 연수 프로그램’에서 출제됐다. 연수 시간을 인정받으려면 강의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한 교사는 “다문화 학생 지도를 위해 문화 다양성을 강조하는 연수에서 ‘통일 시대’가 나온 것부터 뜬금없다”고 했다. 헌법상 북한 지역은 우리 영토다. 현행 다문화지원법에도 북한과 북한 주민은 다문화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

‘평화 위해 북 비판 안 된다’는 시험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만든 것이다. 다문화 연수를 운영하는 교육부 소속 중앙교육연수원과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담당했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연수와 시험 문제는 국립대 사대 교수 1명과 현직 교사 6명이 제작했다”며 “논란이 된 문제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교원 연수 프로그램과 시험 문제는 모두 중앙교육연수원 등 정부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 비판을 해선 안 된다’는 강의 내용과 시험 문제는 당시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아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2018년 당시 문 정부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 이벤트’를 하는 데 몰두했다. 북한 김여정이 왔던 평창에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 팀을 만들기도 했다. 그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 군의 대북 감시와 정찰 능력을 약화시키는 군사 합의까지 서명했다. 2019년 이후 북이 문 정부를 향해 ‘삶은 소대가리’ 등 막말을 퍼부으며 우리를 겨냥한 핵과 미사일 능력을 키웠는데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 했다. 그런데도 “평화가 왔다”고 했다. ‘평화를 위해 북 비판하면 안 된다’는 시험은 문 정부의 ‘평화 쇼’가 한창일 때 나온 것이다. 해당 연수는 작년 말까지 전국 교사 수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서울시교육청에서만 1만명 이상이 연수를 신청했다고 한다.

중앙교육연수원은 올해 해당 연수를 중단했다. 논란이 된 문제도 삭제한 상태다. 연수원 관계자는 “다문화 연수 프로그램이 5년을 넘겨 오래됐기 때문에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며 “북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문제는 연수 주제가 ‘다양성과 평화’였기 때문에 적극적 비판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취지인 것 같다”고 했다.

교원 연수 내용이 논란이 된 것은 이뿐이 아니다. 2019년 전국 유치원·초등·중등 교원을 대상으로 한 직무 연수에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교사의 리더십 부족’으로 돌리는 자료가 사용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 교사 B씨는 “온라인 연수 대부분이 상식 수준 내용이라 자기계발에 도움이 안 된다”며 “엉터리 내용이 들어가거나 특정 정권의 이념에 치우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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