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추진하던 광주광역시가 사업을 대폭 축소·수정하기로 했다. 사진은 광주 남구 정율성거리에 조성된 흉상. 2023.10.13/뉴스1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추진하던 광주광역시가 사업을 대폭 축소·수정하기로 했다. 사진은 광주 남구 정율성거리에 조성된 흉상. 2023.10.13/뉴스1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鄭律成·1914~1976)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추진하던 광주광역시가 사업을 대폭 축소·수정하기로 했다. 정율성 생가에 조성 중인 ‘정율성 전시관’에서 ‘정율성’이라는 이름도 빠지게 됐다.

정율성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45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군 장교로 6·25 남침에 가담한 뒤 중국으로 귀화했다. 음악가인 그는 생전에 북한군과 중국군을 찬양하는 노래를 많이 작곡했다.

정율성의 고향인 광주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그를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광주시는 2009년 ‘정율성로’를 만들었고, 앞서 1996년 시작한 광주성악콩쿠르를 2005년부터 ‘정율성 음악 축제’로 바꿔 개최했다. 이어 생가(生家)와 그 주변에 전시관과 역사 공원을 만드는 사업도 추진했다. 하지만 정율성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이를 중단·철거하라는 요구가 광주 지역에서도 이어졌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정율성 거리’에 동판(銅板)으로 조각돼 있는 정율성의 모습. /김영근 기자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정율성 거리’에 동판(銅板)으로 조각돼 있는 정율성의 모습. /김영근 기자

광주시는 ‘정율성 음악 축제’에 매년 예산 2억∼4억원을 지원해 왔는데, 올해는 전액 삭감했다. 이에 따라 행사 규모가 대폭 축소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다.

정율성 음악 축제는 이미 ‘광주콩쿠르’ ‘광주국제콩쿠르’ 등의 새 이름도 거론된다. 또 광주 남구청이 추진하던 ‘정율성 전시관’ 조성 사업도 전면 수정됐다. 구청은 사업 명칭을 ‘양림 문학관’으로 변경하고 양림동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정율성이 다녔던 전남 화순 능주초등학교에 설치된 대형 벽화도 학교 측 철거 요청으로 교육청과 학부모들이 철거 여부를 논의 중이다.

광주시가 48억원을 들여 전시관 인근에 조성 중인 ‘정율성 역사 공원’은 오는 3월 말 준공 예정인데, 이 공원 이름에서도 ‘정율성’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광주시는 공원 명칭과 콘텐츠, 활용 방안 등을 고려해 새로운 이름과 운영 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 연대'가 25일 오후 광주 남구 정율성로 주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시를 향해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23.10.25./뉴시스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 연대'가 25일 오후 광주 남구 정율성로 주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시를 향해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23.10.25./뉴시스

정율성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8월 당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정율성 공원 반대’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촉발됐다. 당시 박 전 장관은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고,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었다”며 “장관직을 걸고 정율성 역사 공원을 저지하겠다”고 했다.

이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정율성 공원 추진을 굽히지 않겠다”며 강경한 태도로 맞섰다. 강 시장은 “정율성 기념사업은 35년 전 보수 정권(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됐다”며 “국가와 함께 추진했던 ‘한·중 우호 사업’인 정율성 기념사업은 광주시가 책임지고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은 커져 광주를 찬·반으로 쪼개는 결과를 낳았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등은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사업 철회하라”고 요구했고,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정율성이) 항일 독립운동을 한 역사는 외면하고, 한 단면만 부각해 매도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시는 정율성 관련 사업을 축소·수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념 논쟁뿐 아니라 정율성 사업의 방향이나 내용 등에서 이견이 많아 이번 기회에 시민들 의견을 들어 새로운 방향을 잡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권경안·조홍복 기자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