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6월 이정훈(당시 4·27 시대연구원 연구위원)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에게는 2017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북한 공작원과 4차례 만나 자신의 활동 상황과 국내 진보진영 동향을 보고하고 암호화된 지령문 송수신 방법을 교육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이씨는 ‘조작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준구 판사가 맡고 있는 이 사건 1심 재판은 2년 7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이씨가 만났다고 검찰이 지목한 북한 공작원의 실재 여부를 놓고 검찰과 이씨가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접촉한 북한 공작원은 일본계 페루인으로 위장한 ‘고니시(Konishi) 미나미 헬리오 마사오’라고 했다. 또 ‘고니시’는 2020년 2월에 사망했다고 했다. 검찰은 한 탈북민이 자신이 1980년대 북한 공작원으로 중남미에서 활동하며 고니시를 접촉했다고 한 진술, 북한 TV방송 화면에 나온 고니시 얼굴 등을 토대로 고니시가 북 공작원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씨는 “해외 동포라며 찾아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지만 (나는) 그 사람을 공안기관 프락치로 의심했다”면서 “고니시라는 이름은 구속 영장에서 처음 봤고 내가 만난 사람의 신체 특징이 (검찰 주장과) 크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수사 기관이 고니시의 신분을 조작해 혐의를 만들어냈다는 취지다.

이런 와중에 검찰은 작년 6월 페루에 거주 중인 한국인과 현지인 등 5명을 상대로 주(駐)페루 한국대사관에서 ‘영상 증인 신문’을 하겠다고 재판부에 신청했다. 이들은 고니시가 페루에 있던 당시의 통역사, 이웃 주민 등이라고 한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인들인 셈이다.

그러자 이씨는 “영상 신문 장소를 국정원 직원이 파견된 대사관으로 제한한다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 페루 법원이나 적어도 변호사협회 사무실 같은 장소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반대했다.

7개월을 고민하던 재판부는 최근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선례를 검토한 결과”라면서 주페루 한국대사관에서 영상 신문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7월 10일로 예정된 영상 신문은 양국의 시차(14시간)를 감안해 국내 시간으로 오전 9시 30분(페루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된다. 다만 국내 법정에서 페루에 있는 증인을 영상 신문한 전례가 없어, 재판부는 페루 정부에 사법 공조 요청서를 보내기로 했다. 증인 중에 페루 국민이 포함돼 있다는 등의 이유로 페루 정부가 불허하면 신문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법원이 해외에 있는 사람을 영상을 통해 신문한 첫 사례는 2018년 1월 춘천지법 속초지원이 민사 재판에서 미국 거주 증인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국내 형사 재판에서 해외 영상 신문을 진행한 건수는 2022년 10건, 2023년 16건 등으로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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