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연초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지시하면서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군과 정보 당국은 올해 4월 한국 총선, 11월 미국 대선 등 한미 주요 정치 일정에 맞춰 북이 고강도·하이브리드(고·저강 혼합형) 도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통신망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 해상 국지 도발뿐 아니라 최전방 일부 지역을 침투해 주민 납치극을 벌이는 하마스식 도발을 벌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서울·경기 수도권 등 대남 핵 타격을 목표로 하는 전술 핵탄두를 실제 폭파하는 7차 핵실험을 올해 강행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정부 고위 관계자는 2일 본지에 “북한이 ‘이제 4·10 총선이 99일 남았다’고 날짜를 셀 정도로 우리 정치 일정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선 2년 뒤에 열리는 이번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유리한 쪽으로 결과를 내고 대남·대미 레버리지(협상력)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도발·공작 활동을 준비 중이라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신형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시험 발사할 수 있다”면서 “지금도 계속 그런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군은 북한이 올 3월 전후 전술핵탄두를 실제 폭파하는 7차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3월 KN-24 단거리탄도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화산-31은 600㎜ 초대형 방사포(KN-25), 무인 수중공격정 해일, 화살-1·2 순항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10종 이상의 무기에 탑재할 수 있다. 모두 대남, 한반도 전개 미 전략자산 타격 무기다.

북한이 서울을 향해 전술핵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를 장전해 놓고 겁박하며 백령도 등 최전방에 국지 도발을 일으키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전면전으로 번질 우려로 우리 군이 제대로 응징에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3월에 천안함을 폭침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벌였다. 당시는 지방선거(2010년 6월), 재·보궐 선거(2011년 4월) 등 중요 선거가 있는 시기였는데, 북한은 연쇄 도발로 한국 내에 ‘전쟁이냐 평화냐’ 논란을 일으켜 여론을 흔들었다.

군은 북한이 지난해 10월 하마스 대원들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이스라엘 시가지에 침투했던 것처럼 특수부대를 동원할 상황에도 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뒷배 삼아 재래식 도발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국내 금융·통신망 등 공공 인프라 시스템을 해킹하는 사이버 공격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안보 당국 관계자는 “총선에 맞춰 선거관리위원회 투·개표 시스템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개표 관리 시스템이 외부 인터넷을 통해 내부 전산망에 침투할 수 있을 정도로 해킹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총선부터 ‘전수 수검표’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사이버공격을 할 경우 선거 투·개표 과정이 지연되고 부정 선거 논란 등으로 인한 국내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총선을 앞두고 인공지능(AI) 딥페이크 등을 이용한 가짜 영상을 만들어 허위 정보를 유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이 ‘초대형 핵탄두’ 폭발 시험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 중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은 3, 4번 갱도에서는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춰졌다는 게 군의 분석이다. 김정은은 2021년 ‘전략무기 부문 최우선 5대 과업’ 중 하나로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내걸고 핵실험 준비를 계속해왔다.

북한의 핵실험은 유엔 안보리 긴급 소집 등으로 이어지며 국제사회에 또 하나의 충격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국의 대만해협 위기와 더불어 7차 핵실험까지 터지면, 선거를 앞둔 미 바이든 행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그간 고각(高角)으로 쏘던 신형 ICBM 화성-18형을 정상 각도로 발사하며 일본 열도를 넘기고 미 본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고강도 도발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2010년은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던 시기로 북한은 한국 정치 일정을 이용해 각종 도발을 일으키며 내부 결속을 노리고 대남 적개심을 고조시켰다”면서 “집권 13년이 넘어서도 별다른 치적이 없는 김정은이 대내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남·대미 고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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