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錫友
/전 통일원 차관

먹을 것과 자유를 찾아 중국 대륙을 헤매는 수많은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 땅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중국 내 외교공관들에 진입하는 사건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 군인들이 외교공관 담장 위에 철조망을 치며 외교공관 구내로 들어와 울부짖는 탈북자를 짐승처럼 끌어가는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새삼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1961년 초 베를린에서 전 세계에 전송된 역사적 사진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동독측 고층건물 유리창 난간에 매달린 한 여인이 서(西)베를린 쪽으로 탈출하려는 순간, 동독 요원들이 그녀의 손을 잡아 끌어올리는 사진이다. 그 사진에 대한 간결한 설명 문구가 우리의 시대적 정의를 압축하고 있다. ‘자유를 향한 의지와 지구의 만유인력이 이 동독 여인을 자유의 품에 안기게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뚜렷하게 발전해 온 것은 ‘인권에 대한 존중’이었다. 과거 전제국가에서의 인권유린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이 수백만의 아사자를 내고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죽음을 피해 국경을 탈출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그들이 북한으로 송환된다면 가혹한 박해가 기다릴 뿐이다. 그들이 바로 국제법상 보호받아야 하는 ‘난민’이다.

지리적으로 북한과 인접해 있고 소수민족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이 탈북자 문제로 난처해 한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최근 보도와 같이 가택수색이나 가두검문을 강화한다든지, 외교관이나 외교공관의 불가침권을 침해하는 것은 도(度)를 넘은 처사다. 그것은 탈북사태를 일시적으로 지연시키는 데 불과할 따름이며 탈북자들의 자유와 생존을 향한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중국도 ‘난민지위에 관한 제네바협정’에 이미 가입했다. 이 협정 제33조는 조약당사국이 생명이나 자유가 박해받을 지역으로 난민을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탈북자가 중국·북한 간의 국경협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난민조약상의 보호를 거부하는 것은 중국 문명의 정도를 전 세계에 알리는 우매한 일일 뿐이다. 게다가 외교공관과 외교관의 불가침권까지 침해한다면 중국의 국가적 위신은 치명적이다.

필자는 10년 전 외무부의 담당국장으로서 한·중 수교를 추진하였던 것을 일생의 보람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한·중 양국의 발전은 물론, 한반도의 화해협력과 이 지역의 안정에도 기여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이 대만과의 ‘의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한·중 수교를 추진했던 이유 중에는 중국 공산당이 20세기 초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노예상태의 중국인들을 가난과 질곡에서 해방시켰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바로 피식민 아시아인들의 기본적 인권을 신장시켰던 것이다.

그 중국이 그동안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가까운 장래에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등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008년에는 대망의 베이징(北京)올림픽도 개최한다.

이러한 중국이 인류문명의 보편적 규범을 무시해 나간다면, 과거 중국의 패권주의에 시달렸던 주변국들의 반발은 명약관화하며, 전 세계가 중국의 비인도주의를 비난할 것이다. 중국이 탈북자 문제에서 역사적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러한 중국의 자세와 관련해서, 대북 햇볕정책으로 탈북자의 인권문제를 외면한 우리 당국의 무원칙에도 큰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