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鍾奐
/한양대 통일정책연구소 객원 연구원ㆍ前유엔 및 미국 주재 공사

2년 전에 발표된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한 최고당국자가 직접 만나 대화를 했다는 점에서 남북 분단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남북 양측이 그 후 이 선언의 이행문제를 열심히 논의하기는 고사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물론 남북장관급회담마저 실종된 상태다.

기대를 모았던 남북 당국간 대화가 시작 때와는 달리 유명무실하게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1971년 이후 시작과 중단을 반복해 온 30년간의 남북대화에서 북한은 개막―중간―합의―이행 단계 순으로 진행되는 각 단계에 일정한 협상행태의 패턴을 보여왔다.

북한측은 회담 개막단계에는 남한대표단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중간단계에는 남한측의 주장, 목표, 유연성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책략을 동원하면서 토론과 논쟁을 한다. 합의단계에는 남한측이 더 이상 양보하지 않을 것 같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이 정도 선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북한에게 이익이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수령’이 개입해 남한측과 합의를 한다.

합의사항의 구체적 이행문제를 토의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예정된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남한 내부의 각종 이유를 들어 서울에서의 회담 개최를 거부하면서 북측 지역에서 회담을 개최할 것을 고집한다. 또 북한측은 합의사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남측에 이의 이행을 요구하고 남측이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남측 대표에게 폭언을 하고 모욕을 주며,종국에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시킨다.

지난해 3윌 예정된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연기시킨 이후 북한측은 서울에서 회담을 여는 것을 거부하고 지난해 11월 금강산에서 속개됐던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대표 발언과 언론보도로 남한측 수석대표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면전에서 비난했다. 최근 북한은 남북이 ‘6. 15 남북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인 ‘민족 자주’의 정신대로 사고하고 행동해 나간다면 조국통일 문제 해결의 결정적 국면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측이 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측이 말하는 ‘민족 자주’는 레닌의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전술의 논리를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북한의 대남 전략과 연방제 통일정책의 핵심이며 한반도 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측이 ‘민족 자주’에 대해 북한식 해석을 고집한다면 지금처럼 협상행태도 변하지 않고 남북관계도 진전되지 않는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대화는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을 추진하기 위해 고려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또한 한국은 이념적 측면이나 새로운 국제관계의 환경과 점점 벌어지고 있는 남북간 경제력 격차 등 체제경쟁력 측면에서 북한에 대해 절대 우위에 있다. 따라서 한국측은 서두르지 말고 북한의 대남 전략과 협상행태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의 바탕 위에 분명한 협상목표를 수립하고 광범한 국민의 지지를 얻어 이를 지속적으로 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한국측은 변하지 않은 북측에 대화를 애원하면서 북한을 지원하면 남남갈등을 야기하고, 지금의 우세한 입장을 배경으로 북측을 압도하려 하면 북측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측은 남북한이 지속적으로 각 분야의 대화와 교류를 균형되게 실시하면서 동시에 평화정착을 구축해 서로의 공통성과 안전에 대한 확신을 넓혀 나가도록 북한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에 사는 모두가 서로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신뢰하고 안전을 확신하게 되면 ‘우리’라는 의식을 갖게 되고 공영상생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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