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우리에게 분단의 비극이 있었는가. 뼈에 사무친 이산(이산)의 통곡이 있었는가. 새들이 넘지 못할 휴전선이 있었던가.

20일 저녁 해방 이후 첫 조선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이 열린 여의도 KBS홀은 과연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있는가 라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홍일점인 여성 하피스트를 제외하고는 남성들로만 구성된 교향악단과의 첫 대면은 가벼운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은 관현악의 능숙한 표현기법을 통해 ‘아리랑’이나 ‘내고향의 정든집’ ‘그네 뛰는 처녀’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을 들려주었는데, 태평소를 개량한 장새납과 개량 대금인 저대, 꽹과리, 징 등 전통악기들을 서양악기들과 절묘하게 결합시켜 오케스트라에 민족정서를 반영해 친화력을 갖게 했다.

여성독창의 리향숙은 밝고 고운 창법에 노래의 표정을 살려 ‘산으로 가자’ ‘동백꽃’의 서정 가곡을 불렀다. 남성저음의 허광수는 ‘동해의 달밤’과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돈 바질리오의 아리아’를 불렀는데, 러시아의 저음가수를 연상케 하는 넓은 음폭과 청중을 사로잡는 성량, 오페라 아리아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갈채를 받았다. 오케스트라는 중후하면서도 유연한 질감과 관·현악의 앙상블 감각이 탁월했다. 무엇보다 남성 오케스트라의 저력, 안정된 팀웍과 연륜의 깊이가 어우러져 지휘자 김병화와 혼연일체의 유동감을 보였다. 특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은 질풍노도의 격정감을 선사했다. 독주 바이올린의 정현희는 시적 감흥이 흐르는 ‘사향가’ 협주곡을 담백하고 청순한 표정으로 노래했다.

21일 예술의 전당에서 두차례 열린 공연에선 남북 연주자들이 어울리는 감동적 장면을 연출했다. 오후3시 공연때 소프라노 조수미는 북한 지휘자 김병화의 손을 잡고 등장, 우리가곡 ‘선구자’와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꿈속에 살고 싶어’를 불러 객석을 매료시켰다. 거듭되는 앙코르박수에 조수미는 지휘자를 포옹,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진 밤공연에서 북한 바이올리니스트 정현희가 KBS교향악단과 ‘사향가’를 협연하고, 한국 첼리스트 장한나가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차이코프스키 ‘야상곡’을 각각 협연한 장면, 조수미와 북한 테너 리영욱의 ‘축배의 노래’ 이중창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클라이막스는 북한 교향악단의 마지막 곡 ‘아리랑’ 연주 때 연출됐다. 현악 파트를 KBS 교향악단원으로 교체해 연합 오케스트라를 즉석 구성해 연주하고, 청중과 함께 앙코르 곡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탁계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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