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을 돕는 사람들 (2)


현재 783만8670원.
서울 구로구 서서울정보고교의 복도에 설치된 ‘남북통일게시판’에 기록된 모금액이다.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하나 둘씩 넣는 동전들이 97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모였다. 동전은 매달 10만~13만원쯤 쌓인다. 모금함은 교문 앞에 놓여 있다.

이 학교의 조휘제(53) 교사는 “우리 학생들의 도움으로 북한 학생들이 학용품이라도 사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며 “학생들은 물론이고 가끔 교문 앞을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도 동전을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년말 사단법인 ‘정토회’(대표 법륜스님) 사무실에 ‘하나원’(탈북자 적응교육기관)을 졸업한 탈북자들이 찾아왔다. 손에는 돼지저금통을 들고 있었다. 하나원 강의를 맡은 한 스님이 “여러분들은 이제 서울에서 살게 됐으니 북한에 남은 가족이나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좀 돕자”며 돼지저금통을 나누어준 것이다. 이들 교육생 70여명은 교육 기간 내내 각자의 저금통에 동전이나 지폐를 모았다.

지난 12일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광승교회. 주일예배에는 60여명이 참석했다. 넉넉한 형편의 교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학현(34) 담임목사는 “굶어죽어가는 북한 주민에게 먼저 먹고 입히는 게 우리 교인의 의무”라는 내용의 설교를 했다. 마지막 순서는 북한 주민을 위한 기도였다. 교회를 나가면서 몇몇 신도들은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갖고 온 헌 옷들을 내놓았다.

한때 북한 주민 돕기의 창구 역할을 해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만 4000여개의 일선 교회가 동참했다. 소망교회(곽선희 목사),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순복음교회(조용기 목사)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 등 대형교회의 대북 지원은 더욱 활발하지만, “북한측 입장을 고려해 지원 내역 등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에 분유와 유아복, 플라스틱 젖병 등을 보내는 ‘남북나눔운동’의 홍정길 목사는 “지금 북한 아이들을 먹이지 않으면 통일 후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북한의 어른들과 살게 될 것”이라며 “북한을 돕는 일은 종교를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저녁 경기도 파주군의 문산성당. 60여명의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민족의 통일과 일치를 위한 미사’가 진행됐다. 신자 김영자(여·61)씨는 “같은 핏줄의 북한 동포가 적어도 굶는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 날도 북한 동포 돕기를 위한 별도의 2차 헌금이 있었다.

경북 영천에 있는 은해사의 법타 주지스님은 97년 황해북도 사리원에 국수공장을 세웠다. ‘성불사의 밤’이라는 유명한 가곡에 나오는 성불사가 있는 곳이다. 종업원 50명이 국수공장에서 일하고, 밀가루 60톤으로 하루 7700명분의 국수를 생산하고 있다. 공장운영에 필요한 가운과 모자, 자전거, 신발 등 일상용품 일체를 지원해 준다.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한 불타 스님은 “3000여명의 신도 회원에게 회비를 거둬 매달 지원 비용 2200만원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며 “배고픈 고통보다 더한 것은 없고 불교에서 부처도 보살도 먹어야 산다고 말하는데 먹는 것을 해결해 주는 게 곧 보살이고 부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사람들도 도우면서 한 핏줄을 외면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덧붙였다.

신도는 300여명에 불과한 원불교 서울 강남교당은 지금껏 북한 돕기에 7억원을 모금했다. 특히 2000년에는 북한 여성을 위해 생리대 20만개를 만들어 올려보냈다. 박청수(朴淸秀·65) 교무는 “북측에서 ‘누가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했느냐’는 반응을 받았다”고 말했다. 원불교는 작년부터 북한 조선불교도연맹과 식량 지원 문제를 협의 중이다.


‘유진벨재단’의 스티브 린튼(52) 회장은 지난 97년 “남북한은 형제이면서도 북한은 손을 내밀지 않고, 남한은 대북지원에 인색하다”고 지적한 적 있지만, 이제 민간의 대북지원은 안정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국 상표를 떼는 일도 드물고 적대감도 없어졌다고 한다.

현지에 급식 빵 공장을 설립해 평양시내 1만5000명의 어린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있는 ‘한민족복지재단’의 김형석 사무총장은 “평양의 한 노인이 ‘오늘 아침 손주가 급식빵을 먹었다’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활동이 남북의 기성세대들을 화해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 중산층을 여전히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분배의 투명성 때문이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어려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돼야 할 지원 물자들이 만약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게 확인된다면 대북 지원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 물자가 북한에 도착했을 때 직접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물자를 나눠주는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돼 있다. 북한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민간단체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경우에 따라 주민들에게 분배한 결과에 대해 문서를 보내줄 때도 있다”고 했다.

‘유진벨재단’은 방문해서 확인할 수 없으면 물품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결핵 치료약, X-ray 기계 및 필름, 현미경과 시약부품 등을 보낼 때 미리 각 병원의 코드를 붙여 보낸다. 그런 뒤 병원에서 점검 후 없어진 물건이 있으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지원을 중단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민간 지원단체들이 이러한 고민을 안고 혹은 북한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한국이웃사랑회의 이일하 회장은 “사업 초기에는 지원 물자가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을까 고민해 안전 장치로 우선 북한 어린이를 위해 약품을 전달하는 사업부터 손댔다”며 “북한에 투명한 지원을 해서 우리 단체의 후원자들을 믿게 하는 것은 의무”라고 말했다.
/ 기획취재팀
팀장=崔普植사회부차장대우 congchi@chosun.com
김인구 정치부기자
김미영 통한문제연구소 기자
安容均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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