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基

작년 6월 장길수군 가족 7명이 베이징(北京)의 유엔난민담당관실(UNHCR) 사무소에 들어가 ‘난민(難民)’ 지위 인정과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구해 뜻을 이룬 이래, 중국 내 탈북자들의 외국 공관 진입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서 중국 당국은 일단 공관 진입에 성공한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제3국 추방 형식으로 한국에 보내주는 데 별로 인색하지 않아, 탈북자들에게 다행스럽고 한국으로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입장을 너무나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내 각지에서 탈북자들에 대해 대대적 단속을 벌이거나 그들의 외국공관 진입을 사전에 막으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다. 그 바람에 중국 자신의 국제적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동절 연휴 기간인 지난 3일, 중국 당국은 베이징의 외교단지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포함한 수십개 외국 공관들의 담장 둘레 또는 담장 위에 느닷없이 철조망을 가설했다. 대개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의 나라 공관 주변에, 아무리 ‘공관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주재국의 권리 행사라지만 보기 흉하게 철조망을 둘러치는 것이 오늘날 문명국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인가.
중국이 외국 공관 앞에 정복 무장경찰관들을 여러 명씩 배치해 놓고 있는 것도 결코 아름다운 모양이랄 수 없다. 특히 8일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중국 무장경찰들이 진입을 시도한 탈북자들, 그것도 아녀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장면은 전세계에 TV와 신문 사진으로 소개됐다. 무장경찰 일부는 아예 정문 안쪽으로 들어가 연약한 여인을 완력으로 바깥으로 밀어내는 모습도 보였다.

요즘 중국의 외국 공관 앞에는 취재 기자들도 함부로 지나다니기가 어렵고, 사진 같은 것은 찍을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다고 한다. 실제로 필름을 뺏긴 일도 있다. 하기는 지난 8일 선양의 미국 총영사관과 일본 총영사관에서 일어난 탈북자 사건도, 중국의 보도기관들은 완전히 침묵하고 있는 사실이 오히려 세상에 뉴스가 되고 있는 판인 걸 어쩌랴.

근본적으로 되새겨 보면, 사실 탈북자는 결코 중국 자신의 치부(恥部)가 아니다. 북한의 식량난도 이젠 비밀이 아니다. 온 세계가 몇 년째 식량을 지원해주고 있고, 북한 당국이 더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안되니까 살자고 어렵게 국경을 넘어 탈출해 나와 이국 땅을 헤매는 사람들인데, 좀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중국이 탈북자들을 붙잡으려 하고 이들의 한국행을 막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탈북자 문제는 중국 자신의 문제가 된다.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탈북자들이 그냥 중국을 거쳐가게 놔둔다면 중국의 문제는 없어지는 것 아닐까.

탈북자들이 외국 공관 진입이니 ‘난민 지위’ 요구니 하는 어려운 일을 벌이지 않고 중국 당국을 골치 아프게 만들지 않도록, 아예 한국 공관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어떨까. 어차피 한국으로 갈 사람이라면 목숨을 걸고 난리 칠 필요 없이 한국 공관에서 조용히 한국으로 갈 길을 마련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탈북 봇물’ 우려도 있지만, 북한은 전보다 훨씬 강하게 국경을 막고 있다. 다만 이미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쉬워질 경우, 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닥쳐보지 않은 문제이지만,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조정하는 대안들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공관에서 탈북자를 조선족 동포와 구분하는 것은 방법을 찾자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기술적 문제다.

지금의 탈북자 문제 대처 방식은 탈북자들 자신은 물론 북한·중국·한국 등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를 세계 여론에 더욱 부각시킬 뿐이다.
/ 국제부장 chang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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