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평양 중구역 주민들의 출근길 모습. /노동신문
 
지난 10월 2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평양 중구역 주민들의 출근길 모습. /노동신문

북한 당국이 문자메시지로 ‘파이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청년들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4일 보도했다. ‘파이팅’이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영어표현이라며 ‘남조선 괴뢰의 말투를 척결하겠다’는 것이다.

RFA는 이날 “한국 노래와 춤은 물론 한국식 말투까지 반동 문화의 범주에 포함시켜 처벌 수위를 높여 온 북한 당국이 최근 또다시 남한식 영어표현 ‘파이팅’이라는 문자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2020년 12월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27조)엔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하는 자는 노동단련형 또는 2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같은 해 비공개회의에서 “변태적인 괴뢰 말투, 괴뢰풍을 쓸어버리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은 RFA에 “지난달 29일 신의주 역전 광장을 지나가다 안전원으로부터 휴대전화에 있는 통보문(문자메시지)을 검열당했다”며 “안전원들이 주로 젊은이들의 손전화를 단속하는 이유는 문자메시지를 검열해 ‘파이팅’이라는 괴뢰 말투 사용자를 잡아내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날 종일 안전부 단속에 몇 명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검열 차례를 기다리며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가 동무에게 ‘파이팅’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단속돼 안전부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RFA에 말했다.

RFA는 이어 평안남도의 또 다른 소식통 전언이라며 “휴대전화 검열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확인해 괴뢰 말투인 ‘파이팅’을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요즘 청년들 사이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파이팅’이기 때문”이라고도 소개했다.

북한에서 ‘파이팅’은 당과 수령을 위해 ‘혁명적으로 살며 투쟁하자’는 선전 구호로 널리 사용된다고 한다. 친구나 연인끼리, 또는 운동경기에서 응원하는 뜻으로 쓰는 ‘파이팅’은 한국 영향을 받은 새로운 표현이라는 것이다. 다만 ‘파이팅’을 쓰다가 단속되면 6개월의 노동단련형까지 처벌될 수 있다고 RFA는 전했다.

북한에서는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2021년 8월 청년교양보장법이 제정됐다. 이후 북한 당국의 한류 단속과 통제가 강화되면서, 북한 ‘MZ세대’ 사이에서는 ‘오빠야’ ‘자기야’ ‘남친’ 등 ‘남조선 말투’로 대화하는 경향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RFA는 그러나 소식통을 인용해 “말이 아닌 개인들이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에서는 ‘오빠야’ ‘ㅋㅋㅋ’ ‘따랑해’ 등 한국 영화에서 나오는 말을 몰래 사용하고 있다”며 “사법 당국이 아무리 검열해도 청년들 사이에서 한국 말투를 완전히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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