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항공절인 지난달 30일 딸 주애와 공군사령부를 방문해 시위비행을 참관했다고 1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항공절인 지난달 30일 딸 주애와 공군사령부를 방문해 시위비행을 참관했다고 1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조선중앙TV 뉴시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3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에 대해 “(이제는)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검증을 해봐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올해 10살인 김주애가 지난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후계자설’ 가능성을 극히 낮게 봤지만, 최근 북한이 김주애 존재를 부각하는 우상화를 본격화하면서 판단이 바뀌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 실장은 이날 KBS 일요진단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정은, 김주애 두 사람을 놓고 딱 찍었는데 김주애가 가운데 있고 김정은은 뒤에 있는 사진도 노동신문에 보도가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 실장은 “조금 석연치 않고 좀 따져봐야 될 점이 있기 때문에 100% 확신하는 건 맞지 않겠지만 얼마 전까지는 ‘김주애가 후계자일까’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김주애가 후계자일 것 같은데 맞느냐’라고 따져보는 단계”라고 했다.

조 실장이 언급한 사진은 지난주 항공절(11월 30일)을 맞아 김정은 부녀가 함께 공군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비행사들의 훈련을 참관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김주애는 김정은처럼 선글라스에 가죽 코트를 입은 모습으로 김정은보다 앞에 서 있다. 김주애는 그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북한 매체를 통해 사진이 공개됐지만, 늘 그의 자리는 김정은 옆이나 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주애가 주인공처럼 부각된 것이다. 북한 체제 특성상 김정은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사진을 공개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7형 발사 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 손을 꼭 붙잡고 나타난 그때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상당히 앳된 모습이었다. 첫 등장 이후 김주애는 지난 1년 아빠와 주요 군 시설을 찾아 군부대 사열을 받는가 하면 주석단에 앉는 등 점점 의전이 격상됐다. 첫 등장 시 굽 없는 빨간색 신발을 신었던 김주애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엄마 리설주의 머리 스타일과 똑같은 머리를 하고 나타났고, 호칭도 ‘사랑하는 자제분’에서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한층 높여졌다. 김주애가 첫 등장한 11월 18일은 ‘미사일공업절’로 지정됐다. 최근엔 북한 내부 강연회에서 정찰위성 발사를 계기로 김주애를 ‘조선의 샛별 여장군’으로 지칭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김주애의 공개 동향이 누적되면서 북한 전문가들은 점점 ‘김주애 후계자설’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정은의 딸을 위성 발사 성공과 함께 우상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 지도부 최고위층에서 후계자로 임명하는 내부 절차를 끝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북한의 기준이나 상식으로 봐도 너무 나간 건데 북한 주민들도 김정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후계 임명을 다그치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북한이 김주애를 노출시킨 정황을 볼 때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 낳은 아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주애를 어릴 때부터 등장시킴으로써 그만큼 후계 준비 기간을 오래 가져갈 수 있고 주민들에게 ‘딸’을 앞세우는 데 대한 거부감을 마비시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고 했다. 전직 통일부 고위 관료는 “과거 김정일 유고에 대비해 여동생인 김경희가 그 역할을 물려받을 수 있는 2인자 역할을 한 전례가 있다”며 “’백두 혈통’이 중요한 거지 남녀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북한 사회 특성상 김주애가 후계자일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도 있다. 전직 국정원 관료는 “김주애 모습을 부각한 북한 매체 보도가 이어지는 건 딸을 사랑하는 김정은에게 간부들이 아부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도 “북한에서 아직 여성 지도자는 있을 수 없고 40대를 앞둔 김정은의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후계자 언급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김주애는 김정은의 ‘이미지 정치’의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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