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7일 최근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 가운데 비행 금지 조항의 효력 정지 조치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북한이 제공해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는 점에서 평가한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이날 세종연구소 주최 포럼에서 “사실 우리 정부가 (9·19 합의를) 전면 폐기하는 것이 마땅한데, 너무 조심스럽고 소극적으로 취한 조치”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천 전 수석은 2018년 9·19 군사합의에 대해 “북한이 최선의 선의를 보일 때를 가정해서 합의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며 “핵무장한 북한을 지켜주는, 초현실적인 합의”라고 했다. 그러면서 군사 합의의 생명은 “검증을 통한 투명성 확보”라며 “제대로 된 남북 군사합의를 하려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남북이 상호 정찰을 자유화해서 서로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향후 북한이 ‘진보 좌파 정부 때는 평화로웠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오니까 불안하다’는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차원의 도발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그런 도발이 일어나면 대북 억지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 다음 날인 지난 22일 9·19 남북군사합의 가운데 비행 금지 구역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그러자 북한은 군사적 긴장 고조 책임을 남한에 떠넘기며 사실상의 합의 무효화 선언을 했다.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전진 배치가 가능한 것은 전술핵무기 중에서 사거리가 짧은 신형 전술 유도 무기인 ‘화성-11라’ CRBM(근거리탄도미사일)이나 600㎜ 초대구경 방사포 등 무기 체계가 될 것”이라고 봤다. 양 위원은 “북한은 신무기와 부대 배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무력 도발도 동시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초에는 접경 지역 부대 이동이나 총격, 무인기의 우리 영공 침입 등 약한 수준에서 우리 대응 수준을 보면서 점차 강도를 높여 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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