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할 양자 협의체를 추진하기로 했다. 외교부가 방한 중인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면담해 합의한 내용이다. 최근 중국의 탈북자 대규모 북송 사태를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미가 공동 대응 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한 한미 협의체가 있었다. 하지만 두 차례 회의가 열린 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사라졌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 관행을 바꾸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국제법상 난민이자, 헌법상 한국 국민인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는 상황에 한국이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만은 없다. 탈북자 북송은 국경을 넘은 외국인을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아니다. 굶주리고 핍박받다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난민을 지옥으로 되돌려보내는 야만적 행태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 인권 특사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영호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 인권 특사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탈북자 북송을 비롯한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국제사회에 광범위하고도 효과적으로 알려나가야 한다. 즉각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 노력을 계속하면 중국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공산당 국가이기는 하지만 유엔 상임이사국에다 세계와 무역해야 하는 처지에서 국제사회의 평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 북한인권협의체 출범은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현재 북한엔 김정욱 선교사를 비롯해 우리 국민 6명이 억류돼 있다. 길게는 10년째 생사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납북자와 국군 포로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모두 한미 북한인권협의체에서 다룰 수 있는 인권 문제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억류자·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3국 공조’를 공동성명에 명시했다. 한미 북한인권협의체 출범은 그 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일본, EU와도 손잡아야 한다.

이번 탈북자 집단 북송 과정에서 정부는 무기력한 대처로 비판받았다. 충분히 예견된 사태임에도 이를 막기 위해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한미 협의체 출범 역시 쏟아지는 비판을 잠시 모면하려는 면피성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첫 회의가 열리면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을 규탄하고 이를 막을 실질적 조치부터 논의해야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와도 공조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얼마나 절박하게 임하는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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