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한 달 전인 지난 8월 중순부터 러시아에 탄약 등 군사 물자를 제공해온 정황이 포착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앞서 백악관은 지난달 북한이 러시아 선박을 이용해 1000개 이상 컨테이너 규모의 군사장비와 탄약을 러시아에 제공했다며 위성 사진 등을 공개했는데, 이보다도 앞선 시점에 북·러간 ‘군사 거래’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WP는 “북러간 (군사 물자 거래) 작전은 백악관이 밝힌 것보다 더 정기적이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WP는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위성사진을 입수해 러시아 국적 선박 앙가라호와 마리아호가 8월 중순부터 지난 14일까지 최소 5차례 북한 북동부 나진항과 러시아 극동의 두나이를 왕복 운항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러시아 선박들은 북한으로부터 수백개의 컨테이너를 러시아로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WP는 해당 컨테이너의 내용물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탄약 등 군사 장비를 수송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WP는 “북한은 소비에트 시대에 사용됐던 122mm 다연장 로켓인 ‘그라드(grad)’와 122mm 곡사포탄을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옛 소련 등에서 그라드 다연장 로켓포와 탄을 들여오면서 북한은 이를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포와 탄 등을 자체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이 로켓탄을 사용한 북한은 서울 등 수도권 타격을 위해 최전방 부대 등에 배치해놨다. RUSI의 선임연구원 잭 와틀링은 “북한은 많은 탄약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한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것(북한 탄약 제공)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WP는 화물 수송이 시작될 무렵,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290km 떨어진 러시아 서남부 티호레츠크 소재 탄약 창고의 저장용 구덩이가 빠르게 확장됐다고 했다. 그 구덩이들은 최근 몇 주 동안 철도 차량이 도착하면서 탄약 상자로 채워졌다. 탄약 저장 구덩이 옆에 놓여 있던 컨테이너들의 색깔과 크기는 북한 나진에서 러시아 두나이로 이송된 컨테이너들과 일치했다.

앙가라호와 마리아호는 특히 나진과 두나이를 오갈 때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꺼 추적을 피했다고 한다.

앞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지난 9월7일에서 지난 1일 사이 러시아 국적 선박 앙가라호를 이용해 북한이 1000개 이상 컨테이너 규모의 군사장비와 탄약을 러시아에 제공했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 앞선 시기에 이미 북러간 무기 거래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기 수송이 시작된 8월 중순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방북(7월 25∼27일)에 이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9월13일)을 이뤄지기 약 1개월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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