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외교부 청사./조선일보 DB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외교부 청사./조선일보 DB

중국의 탈북자 집단 송환에 대해 통일부가 13일 “사실로 보인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중국 측에 엄중하게 (문제)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탈북자 수백 명을 기습 북송한 것이 지난 9일인데 기초적인 사실 파악에만 나흘이 걸렸다. 국제법상 난민이자, 헌법상 한국 국민인 이들이 북송되면 학대·고문·폭행을 당할 것이 확실한데 야만적인 일을 벌인 중국에 항의도 안 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정보 실패일 뿐 아니라 저자세 외교다.

중국이 코로나 기간 중 체포해 억류한 탈북자는 2000명이 넘는다. 북한이 3년간 봉쇄됐던 국경을 열면서 대대적 강제 북송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통일부 장관은 지난 8월 중국을 향해 “탈북민을 의사에 반해 북송해선 안 된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민을 전원 수용하겠다”고 했고, 방중했던 국무총리도 시진핑 주석에게 강제 북송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뿐이었다. 북송을 막기 위해 정부가 국제사회와 공조해 중국에 압박을 가했다는 어떠한 얘기도 없다. 말뿐인 경고를 중국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

주중 한국 대사관에선 외교부·국정원·경찰 파견 직원들이 공조해 북송 가능성 등을 면밀히 살피고 필요시 중국 당국과 외교 교섭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능이 정상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대사관의 ‘깜깜이 대응’과 무기력한 대처가 질타당했지만 주중 대사는 반성이나 개선 노력은 언급하지 않은 채 “중국의 체제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만 했다.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지적하긴커녕 사실상 두둔했다.

이번 탈북자 북송은 한국 정부 주무 장관의 공개 경고와 총리의 협조 요청을 중국이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주한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고 규탄 성명을 내야 마땅하지만 아무 조치도 없다. 해외 체류 탈북자 문제를 총괄하는 외교부의 해당 부서 명칭부터 ‘민족공동체 해외협력팀’이다. 탈북자 문제를 껄끄러워하는 중국 눈치를 본 것이다. 왜 ‘해외 북한 이탈주민 구조팀’ 같은 명확한 이름을 못 쓰나.

아직 중국엔 1000명 넘는 탈북자가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제사회와 공조해 중국의 반문명적인 탈북자 억류·북송을 규탄해야 한다. 다음 달 한·영 정상회담을 비롯한 양자 회담과 각종 다자 정상회의 때마다 이 점을 부각해야 한다. 연말 유엔 총회에서 논의하는 북한 인권 결의에 북송 사태가 언급되도록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대중 저자세 외교를 고치지 못하면 제2, 제3의 탈북자 집단 강제 북송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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