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출간을 앞둔 회고록에서 노무현 정부때 육군참모총장 재직 당시 일화를 공개하며 “총장 재임 중 정부와 싸우는데만 허송세월하고 제가 꿈꿔 왔던 ‘미래 육군 구상’을 전혀 실현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회고했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가석방 된 지난해 5월30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차량에 오르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뉴스1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가석방 된 지난해 5월30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차량에 오르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뉴스1

남 전 원장은 회고록 ‘옥중에서 쓴 군인 남재준이 걸어온 길’에서 노무현 정부때 당시 청와대 수석이 ‘남북이 화해협력 하는 마당에 적대 감정을 부추기는 (군) 정신교육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한 일을 소개했다. 남 전 원장은 당시 청와대 수석의 요구를 거절하고 오히려 군 정신교육을 더욱 강화했다고 한다.

부산 군수사령부의 대전 유성 이전 사업에 대한 중단 요구도 있었다. 남 전 원장은 “부산에 있던 군수사령부를 유성으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었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 사람들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군수사령부를 이전하지 말고 그대로 부산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군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부시키는것에 반대하고 대통령 요구를 거절했다”고 회고록에 기술했다.

회고록엔 남 전 원장이 육군참모총장 재임 중 무수한 압박에도 외부 인사청탁을 근절시킨 일화도 담겼다. 노무현 대통령 이외에 청와대 인사들도 인사 청탁한 인물이 4명 더 있었는데 이들 모두 장군 진급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인사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남 전 원장에 대한 군 검찰 조사를 중단시킬 것을 지시한 일화도 소개됐다. 장군 진급을 하지 못한 한 장교가 남 전 원장에 대한 무기명 투서를 유포했는데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무기명 투서는 수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당시 청와대는 군 검찰을 동원해 남 전 원장에 대한 수사를 강행했고 노 전 대통령은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자리에서 ‘사람이 그렇게 깨끗하게 살 수도 있는것이냐. (수사에서 나온게)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그럼 끝내자’고 했다고 한다. 남 전 원장은 “당시 그 자리에 배석자 중 한 분이 저에게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화로 알려줬다”며 “청와대에서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이념적 실세그룹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남 전 원장에 대한 수사는 육군참모총장 임기 내내 이어졌지만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 전 원장은 회고록에서 이런 일화를 기술하면서 “제가 겪은 우리 나라의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모화사상(慕華思想ㆍ중국의 문물과 사상을 흠모하고 따르려는 사상)에 찌든 사대주의자들이었는가 하면 김일성을 숭배하는 주체사상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마오쩌뚱과 김일성, 그리고 붉은 이념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없었다”며 “그러므로 이들이 이야기하는 ‘적폐’는 바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함으로써 그들이 추종하는 공산화 내지는 소위 민중민주사회건설을 방해한 세력, 즉 ‘반동’들의 호칭인 것이고 이들과 저와의 투쟁은 2003년 4월 육참총장 취임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했다.

남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재직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함구했다. 남 전 원장은 회고록에서 “국정원장 재직시 일들은 국가 기밀 사항이 대부분으로 책에 담을 수가 없었다”며 “다만 남북통일이 되고 나면 더 이상 국가기밀이 될 수 없으므로 그때는 쓰려고 한다. 반드시 내 생전에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남 전 원장측 인사는 5일 “남 전 원장이 ‘나 살자고 국가안보에 매우 소중한 자산인 정보기관의 일을 까발리는 것은 나로선 용납이 안되는 일이고 박근혜 대통령과 지금 정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남 전 원장은 원장 재직 시절 2004년 10ㆍ4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남 전 원장은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고 서해 해상군사경계선(한강 하구에서 덕적도 및 백령도 중간점을 연결하는 선)을 주장해 왔다”며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해군을 현재 백령도 북방을 연하는 NLL의 북쪽으로 철수시킨 것으로 해주겠으니 이에 상응하도록 우리 해군도 NLL로부터 그들이 주장하는 서해 해상군사경계선 남쪽까지 철수하라는 것”이라며 “NLL과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사이의 해역에 군함 출입을 금지하고 평화수역으로 정하자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은 서해 해상분계선인 한강 하구까지 몰래 잠수함을 침투시키고 우리는 백령도에서 해군을 철수시켜 서해해상분계선 이북으로는 출입할 수 없어 NLL이 없어지고 서해 해상분계선이 해안 국경이 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남 전 원장은 “이는 NLL포기이자 한강 이북에서 백령도까지의 영해 포기나 마찬가지”라며 “제가 공개한건 이 비밀 회담 내용인 것”이라고 했다.

남 전 원장은 “모든 공직자는 정권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에 충성해야 한다”며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 또한 개인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사적 수단이 아니다”고 썼다. 이어 “그것은 대통령이 대한민국 주권과 영토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국가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도록 나라를 이끌어 가라고 주어진 공적 수단”이라며 “그러므로 공직자 또한 개인적 은혜에 얽매어 공적인 책무를 혼동하는 과오를 저질러서도 안된다”고 했다.

남 전 원장 회고록엔 ‘군인 남재준’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도 많이 담겨 있다. 5ㆍ18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남 전 원장은 육군대학에서 강의중이었는데 당시 ‘광주폭도들의 폭력사태에 대한 무력진압 당위성에 대한 발표 준비를 해서 전국 순회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으나 불응했다고 한다. 남 전 원장은 당시 “어떠한 이유로든 폭력을 행사하는건 군인의 임무가 아니다. 군인은 준비된 힘과 전투에서 승리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전투원들이지 상대가 나를 때렸기 때문에 나도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집단이 아니다”며 순회교육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일로 남 전 원장은 교관 직위 해임 통보를 받았다.

미국 국방부의 작계 5027 수정 작업을 막았던 일도 있었다. 남 전 원장의 육군참모총장 재직 시절 미국은 ‘미순ㆍ효선양 사건’ 발생을 계기로 작계 5027 수정 작업에 착수했었다고 한다. 남 전 원장은 “이 수정지침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한마디로 과거처럼 적의 재침시 북진 통일로 완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괴군이 점령한 지역만을 탈환하여 침략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데 그치겠다는 것”이라며 “당시 연합사 내 작계 5027 수정 토론회에서 결코 동의할 수 없음을 밝혔고 결국 작계5027은 수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남 전 원장 회고록엔 개인적 가정사와 아픔을 겪은 일들도 담겨 있다. 남 전 원장은 수감(2017년11월~2022년5월) 기간 모친상을 당해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군 재직 중 갓난아이였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일이며 서울 광화문 우체국과 서울역에 취직해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3수끝에 육사에 합격한 일화 등도 회고록에 포함됐다.

남 전 원장은 군 후배들 사이에 ‘영원한 사관생도 3학년, 천연기념물’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서울 구치소 수감 기간 남 전 원장과 40여년 전 36사단에서 근무한 인사가 수감 시설에서 남 전 원장의 ‘생도 3학년 걸음걸이’를 알아보고 수십년만에 만나 인사를 나눈일도 있었다고 한다. 남 전 원장은 오는 13일 회고록 출판기념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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