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3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로켓 조립 격납고를 둘러보고 있다./AP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3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로켓 조립 격납고를 둘러보고 있다./AP 연합뉴스

한때 세계 2위 군사력을 자랑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깊은 수렁에 빠져 존망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사흘이면 끝나리라 예상했던 우크라이나 정복의 꿈을 1년 반이 넘도록 이루지 못한 채 병력과 무기 부족이 심각하다. 러시아가 자랑하던 최첨단 전차, 전폭기, 극초음속 미사일, 대공방어망 등이 대거 소진되고, 20세기 전반에 사용하던 골동품 전차와 기관총까지 동원되는 형국이다. 러시아는 최후 수단으로 핵위협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아무도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패퇴할 경우 푸틴 대통령 실각과 연방의 분열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러시아가 서 있는 벼랑의 다른 한편엔 북한이 서 있다. 북한은 세계 아홉 번째 핵보유국을 꿈꾸었고 마침내 성공했건만 그 ‘성공의 저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남 적화통일의 집념을 이루고자 30년의 모진 난관을 감내하고 핵보유국이 되었지만, 거기에 ‘약속의 땅’은 없었다. 핵보유국이 되면 한국과 미국이 핵 위협에 굴복해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복속이 곧 이룩되리라 믿었지만, 아무도 굴복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이룩되지 않았다. 게다가 핵무장이 초래한 유엔 경제제재는 북한의 경제력과 전쟁 수행 능력을 고갈시키고 있어, 북한 체제를 생존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이처럼 벼랑 끝에 나란히 선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주 돌연 동병상련의 손을 잡았다. 주된 이유는 북한의 대규모 포탄 보유량 때문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스텔스 전폭기, 무인항공기 등 21세기 무기가 날아다니는 우크라이나의 하늘과 달리 지상에선 전차, 대포, 지뢰, 기관총 등 구시대 무기들이 대세다. 장기간의 소모전으로 양측 모두 포탄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한반도가 이를 해결할 무기 창고로 주목받고 있다. 냉전 종식 후 세계 군사력의 대대적 감축이 이루어진 지난 30년의 평화기에 유독 한국과 북한은 냉전시대의 군사적 대치를 계속하면서 수백만 발의 포탄을 비축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나토 표준 155㎜ 포탄을 하루평균 6000발, 연간 약 200만 발 소모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진영의 연간 포탄 생산량은 나토 30만 발, 한국 20만 발, 미국 12만 발 정도에 불과해 공급이 절대 부족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비축한 300여 만 발의 155㎜ 포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포탄 사용량은 하루 평균 5만 발, 연간 약 1800만 발인데, 러시아의 연간 포탄 생산량 100만~200만 발은 수요량의 1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북한이 비축한 수백만 발의 포탄에 관심이 많으나, 그중 100만 발을 구입해 봐야 20일분 소모량에 불과해 전쟁의 대세를 바꾸기는 어렵다.

따라서 북한산 포탄 수입 문제보다는 그 대가로 북한이 무엇을 받아낼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가로 거론되는 위성발사 기술,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 핵잠수함 기술 등은 미국의 안보와 직결된 사항이어서 워싱턴의 강경한 보복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 시 “한반도 상황 관련 어떤 합의도 위반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 걸음 물러섰으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적다. 러시아가 북한산 포탄 100만 발을 구입할 경우 대금은 최대 5억~6억 달러가 될 것이며, 러시아는 그 대가로 민수용으로 위장된 첨단 무기 기술을 제공할 수도 있고, 수호이35 스텔스 전폭기나 대량의 정찰드론, 자폭드론을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포탄 수입 대금으로 북한에 어떤 첨단 무기나 제조 기술을 판매하건, 이는 북한의 대남 핵 위협을 고도화하고 재래식 군사력 위협까지 가중시키는 중대한 안보상 위해가 될 것이다. 또한 만일 북한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전세 역전에 기여하게 된다면,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고무하게 되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직접적 안보 위협을 초래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러 무기 거래가 현실화될 경우, 정부는 대우크라이나 살상무기 불제공 원칙을 응당 수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에 의해 이미 파기되어 한국만 홀로 준수하고 있는 남북군사합의와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의 폐기 문제도 차제에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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