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를 폭파하는 모습. /뉴스1
 
2018년 5월 24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를 폭파하는 모습. /뉴스1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군 출신 탈북민들이 핵실험 피해 실태를 처음으로 직접 증언했다. 핵실험 이후 원인 모를 질병을 앓는 환자가 늘어났지만, 북한 당국의 정보 통제로 무슨 병인지 알 수 없던 주민들은 그저 ‘귀신병’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통일부도 북한 핵실험장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을 대상으로 피폭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제20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20일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빌딩에서 열린 북한 핵실험 피해 증언 기자회견에는 길주군 출신 탈북민 4명이 증언자로 참석했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김순복(이하 가명)씨는 길주군 거주 당시 풍계리에서 흘러 내려오는 남대천의 물을 식수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핵실험장이 건설되고 군인들이 차단봉을 설치하고 이동을 통제하기 전까지 경치 좋은 시골 마을이었던 풍계리는 이제 더는 찾을 길이 없다”며 “언제부터인가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환자가 늘어나고 결핵 환자, 피부염 환자도 늘었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은 이 밖에도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을 가리켜 ‘귀신병’에 걸렸다고 했고,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써야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기억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2013년) 때도 길주군에 거주한 이영란씨는 “길주군 주민은 풍계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로 이용했기 때문에 대부분 피폭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하나둘씩 병원에서 결핵 진단을 받았고, 병에 걸린 지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아들도 결핵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씨는 특히 아들이 평양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하려고 중국을 통해 아들에게 돈을 보냈는데, ‘길주군 환자는 평양에 한발짝도 들일 수 없다’는 북한 당국의 방침 때문에 아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일체 평양에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한다고 증명서조차 떼주지 않는다고 했다”며 “한 집 건너 다 위암 환자, 췌장암 환자, 폐암 환자였다”고 했다.

지난 2월 북한인권단체가 핵실험장 인근 주민 수만 명이 지하수 오염 영향권에 있다고 주장한 적은 있지만, 이 지역 출신 탈북민들이 직접 피해를 증언한 건 처음이다.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탈북민 40명을 대상으로 피폭 조사를 실시했는데, 9명에게서 이상 수치가 나왔다. 당시에는 ‘교란변수’를 이유로 검사를 종결했다.

통일부는 올해 들어 북한 핵실험장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이르면 연말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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