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관계자들. /뉴스1
 
창원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관계자들. /뉴스1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받고 있는 경남 창원 ‘자통(자주통일 민중전위)’ 사건의 피고인들이 얼마 전 재판부를 바꿔 달라는 기피 신청을 냈다. 기피 신청에 대한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판이 열리지 못한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지난 3월 구속 기소 이후 여러 이유로 재판을 지연시켰다. 4월 초엔 창원에서 재판받게 해달라며 관할 이전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했고 곧바로 국민 참여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신청해 기각당하자 항고, 재항고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보니 5개월 넘게 정식 재판이 열리지 못했다.

이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풀려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행법은 심급별로 6개월인 구속 기간 내에 재판을 마치지 못하면 구속 피고인을 풀어주게 돼 있다. 이들의 1심 구속 기한은 14일로 끝날 예정이었다. 재판부 기피 신청에 따른 심리 기간은 구속 기간에서 제외돼 이들이 바로 석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의 지연 작전이 성공해 재판을 재개하더라도 얼마 후 석방돼 불구속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같은 재판 지연이 국보법 재판 피고인들의 단골 전략이라는 점이다. 북한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을 꾸린 혐의로 2021년 9월 기소된 ‘충북동지회’ 사건은 피고인들이 법관 기피 신청, 위헌심판제청 신청 등 온갖 지연책을 동원하는 바람에 아직도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그 사이 피고인들은 구속 기간 만료와 보석 등으로 전원 석방됐다. 이들 중 일부는 또 다른 간첩단 사건의 주범과 접촉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주 ‘ㅎㄱㅎ’ ‘민노총 간첩단’ 등의 피고인들도 줄줄이 국민 참여 재판을 신청했다.

간첩 혐의자도 법적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지만 일종의 입법 공백을 악용해 재판 시스템을 농락하는 것까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참여재판 신청, 위헌 심판 신청 등 절차적인 문제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경우 이를 구속 기간에서 제외하도록 형사소송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법원도 재판 지연 전략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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