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지난 23일 압수 수색한 진보당 전 공동대표 조모씨가 지난해 8월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동료 지하조직원들에게 “총회장님(북한 김정은 지칭)의 충실한 전사가 되겠다”고 밝힌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북한은 이후 조 전 대표에게 “진보당·민주노총 산별노조·청년학생단체를 장악 지도하라” “반(反)윤석열 투쟁 역량 폭을 넓혀나가라”는 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조씨가 북 지령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는지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이다.

압수 수색 영장 등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옛 225국)은 지난해 10월 19일 조씨의 조직 상급자인 김모씨가 소속된 경남 창원의 북한 지하조직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에 “총회장님에 대한 흠모심을 깊이 심는데 선차적 힘을 넣어라”는 지령문을 보냈다. 조씨가 당 대표가 된 지 두 달 됐을 때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진보당과 민주노총 산별노조들, 청년학생 단체들에 비합소조들을 많이 조직하라”면서 “해당 단체에서 활동하는 진보 활동가들을 망라해 핵심 대열을 늘려 나가라”고도 했다. ‘비합 소조’란 ‘비합법적(비공식적) 소규모 조직’이란 뜻의 북한 말이다. 수사 관계자는 “북한이 정당, 노조, 시민 단체 등 국내 합법 단체에 침투해 일종의 사모임을 결성·확대하는 방식으로 조직 장악력을 키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씨는 상급자 김모씨에게 “임원으로 선발돼 더없는 영광이고 총회장님의 충실한 전사가 되고자 하는 열의가 충만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조씨의 이 같은 입장을 그해 10월 26일 자 대북 보고문에 담아 북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조 사장은 서울 지역 전국회 대표로서 진보당 중앙사업을 맡기로 했다”고 했다. ‘조 사장’은 조씨를, ‘전국회’는 조씨가 속한 ‘자통’의 하부망이다. 조씨가 자통 전국회의 서울지사장으로 활동한 정황이 국정원이 확보한 대북 보고문에서 파악된 것이다.

조씨의 상급자인 김씨는 지난 3월 15일 북측과 불법 통신한 혐의 등으로 자통 지도부에서 함께 활동한 황모·성모·정모씨 등과 함께 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자통 지도부인 일명 ‘이사회’에서 서울·전국 담당 이사로 불리며 ‘전국회’라는 하부망 총책으로 조씨뿐 아니라 전교조 강원지부장인 진모씨도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과 경찰은 지난 23일 조씨와 진씨 등 2명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국정원은 전국 각지에 정당, 노조, 시민 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북 연계 의심 인사들이 다수 있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조씨 압수 수색 영장, 김씨 공소장 등을 보면, 북한은 지난해 11월 3일 자통 측에 반정부 시위 지령도 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이사회(자통 지도부 지칭)에서는 윤석열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2의 촛불 국민대항쟁을 일으키는 데 목표를 두라”면서 “촛불 시위를 확대해나가기 위한 사업에 새끼 회사들과 전국회(김씨가 총책인 자통 하부망)를 적극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사장 지역(서울)과 진 사장 지역(강원) 등에서 장악한 진보 운동 단체, 대중운동 단체, 반보수 투쟁 단체들을 윤석열 퇴진을 위한 촛불 행동에 적극 참가시켜 반윤석열 투쟁 역량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했다.

전직 대공 수사관은 “자통이 창원에 본부를 두고 서울, 강원, 진주, 전북 등 전국 각지에 조직 하부망을 풀뿌리처럼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노조나 시민 단체가 담당 분야와 별 연관성 없는 국가 안보, 국방, 대외 정책 관련 정치 시위를 벌인 것도 북한의 대남 공작 활동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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