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보낸 대남 지령문에서 보수 정당 내홍을 유발하는 선전·선동 강화와 반(反)정부 시위를 통한 사회 분열 조장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국가 주요 인프라 파괴나 반미(反美)·반일(反日) 선동에 치중했지만,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남 공작도 ‘총선 모드’로 전환한 셈이다. 이른바 ‘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으로 지령들 다수가 외부에 노출되자 북한이 대남 공작 전략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일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대남 선전 매체와 해외에 파견한 공작원 등을 통해 ‘반정부 분위기 조장’에 공을 들일 것을 지시하고 있다. 대남 지령 중에는 지난 3월 당선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리더십을 “대통령실의 막가파식 총력전 때문”이라 폄훼하고, 국민의힘을 윤석열 대통령의 ‘사당(私黨)’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많다고 한다. 특히 안철수계·이준석계 등 비윤(非尹)계 의원들에 대한 ‘공천 대학살’ 가능성을 언급하며 “결국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친윤 대 비윤’ 프레임과 제3신당론을 띄워 여당, 나아가 보수 진영 내 갈등을 조장하라는 것이다.

이런 프레임은 총선 때 ‘민생 파탄’ ‘권력욕에만 눈이 멀어 있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 같은 구호를 앞세워 국정 심판론을 자극하자는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대남 지령문에는 “야권, 종교계, 사회단체 등이 파쇼 독재자, 검찰만능주의자 윤석열을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해 쫓아내야 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한 표출시켜 제2의 촛불 집회를 일으키는 데 목표를 두고 열심히 활동해야 할 것”이라고 돼 있다. 방첩 당국 관계자는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유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전술 제시에 집중하는 ‘총선 개입 정치 공작’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이 계파 갈등이나 보수 신당 창당론까지 들고 나와 여당 내 갈등 유발을 부추기는 것은 최근에 두드러지는 경향이다. ‘창원 간첩단’ 사건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과거 북한의 대남 지령을 보면 “청와대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송전망체계 자료 입수”같이 국가 기간 시설에 대한 마비와 사회 혼란 유도 등에 주안점을 둔 내용이 많았다. 또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기습 시위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괴담의 인터넷 유포 등 반일·반미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집중했다.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는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진보당이 재보궐선거로 원내(院內)에 입성했고, 대통령 지지율도 박스권에 갇혀 있는 만큼 지금이 정치 개입의 적기라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을 노골화한 것은 북한에도 내년 총선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지금의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계속되면 집권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가 바로 레임덕에 들어갈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제2 촛불 집회’ 같은 대규모 대정부 투쟁을 전개할 유리한 환경이 갖춰지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좌파 단체들이 연합해 도심에서 주말마다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반면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 북한 인권 문제 공론화 같은 외교 기조가 지속돼 북한의 고립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