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광복 이후 미·소 군정 시기를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련군 치하의 ‘공산 폭력’에 저항했던 ‘신의주 학생 의거’를 언급한 교과서는 9종 가운데 1종밖에 없다. 반면 남로당의 무장 폭동이 촉발한 ‘4·3 사건’은 모든 교과서가 상세히 다뤘다.

교과서들은 대체로 미군은 남한을 ‘직접 통치’했으며 친일파를 기용했다고 서술하고, 소련군은 행정권을 북한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에 이양해 ‘간접 통치’를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는 소련군이 선전·선동을 위해 작성한 치스차코프 포고문 제1호와 미 육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포고령 제1호를 구체적 설명 없이 나란히 실어 비교했다. 동아출판 교과서는 두 포고문을 보여주며 ‘미국과 소련의 통치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 미군의 포고문은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맥아더)의 권한하에서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반면 소련군의 포고문은 ‘조선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는 내용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학생들에게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내용 아니냐”며 “김일성을 통해 친소 정권을 세운 소련의 실상에 대해선 눈을 감고 미국만 부정적으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은 2013년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가 출판사들에 수정 권고한 내용인데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또 소련군 치하의 반공 시위인 ‘신의주 학생 의거’를 제대로 다룬 교과서는 없었다. 신의주 사건은 1945년 11월 중학생들이 소련과 공산당 만행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이다 공산당의 총격으로 학생 23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다쳤으며 2000여 명이 검거·투옥된 사건이다. 현재 교과서 9종 가운데 1종만 ‘소련이 민족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신의주를 비롯해 각지에서 반공 시위가 일어났다’고 간략히 쓰고 있다. 신의주 학생 의거는 최근 수십 년간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제주 4·3 사건은 9종 모두 최소 반 쪽, 최대 2쪽에 걸쳐 설명한다. 4·3 사건은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해서 일으킨 무장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교육계에선 “4·3 사건도 아이들이 배워야 하지만, 북에서 일어난 반공 시위로 학생들이 희생된 사건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