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가 대통령실 인근 비행금지구역(P-73)까지 침범한 사실을 군 당국이 5일 뒤늦게 인정하면서 안보 태세에 또다시 허점이 드러났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미사일 오발, 전투기 추락 등 군 시스템의 문제가 드러나자 대통령실에서는 일부 군 지휘부의 개편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6월9일 강원도 인제군 야산에서 발견된 북한 소형 무인기./뉴스1
 
2017년 6월9일 강원도 인제군 야산에서 발견된 북한 소형 무인기./뉴스1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전비태세검열실의 조사 결과, 적 소형 무인기 1대로 추정되는 항적이 (서울) 비행금지구역의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기점으로 반경 3.7㎞ 구역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에는 용산뿐 아니라 서초·동작·중구 일부 지역도 포함된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비행금지구역 일부가 북 무인기에 뚫린 데다 군이 관련 의혹에 제기될 때마다 부인해 왔기 때문에 군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군 지휘부를 비롯해 군 조직 곳곳에 비정상적 요소가 있음을 대통령실도 인지하고 있다”며 “현재 바로잡아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문책 검토에 착수해야 한다는 대통령실 내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선 군의 안보 허점이 반복되고, 군의 사후 대응에도 문제가 드러난 만큼 군의 대비 태세와 작전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領空) 침범이 발생한 후 대통령실 일각에서 군 작전 지휘 체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원인 진단 움직임이 일고 있다. 북 무인기에 영공이 뚫린 것도 문제지만 사후 분석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을 두고 문제가 군 지휘부 인사에 있는지, 작전·무기 시스템에 있는지 분석에 들어간 것이다.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전임 정부 철학에 지난 5년간 익숙해진 군의 기강을 쇄신하기 위해 군 지휘부에 대한 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작전·무기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대적 인적 개편 필요성도 거론되지만 한정된 군 자원과 작전의 연속성, 그리고 사기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실의 이런 분위기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태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반복돼 온 대비 태세 허점이 집약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크기가 2m가 안 되는 소형 무인기는 탐지·추적·격추가 어렵다”고 한다. 소형 무인기 침투를 원천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군은 북 무인기 침투 당시 프로펠러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출격시켜 앞뒤가 안 맞는 대응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공군 KA-1 경공격기 1대가 추락하면서 대비 태세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5일 경기 양주 가납리 비행장 일대에서 합동참모본부 주관으로 북한 무인기 침투 상황 대응 방공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뉴스1
 
5일 경기 양주 가납리 비행장 일대에서 합동참모본부 주관으로 북한 무인기 침투 상황 대응 방공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관련 보고를 받고 “군 기강이 해이하고 훈련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군 지휘부를 강하게 질책했다. 실제로 새 정부 출범 이후 군에선 대비 태세 부실을 보여주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북한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강원도 강릉비행장에서 동해를 향해 현무-2 미사일을 쐈지만, 이 미사일이 반대 방향으로 선회해 민가 인근 군부대 골프장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엔 북한 미사일 도발에 맞서 KF-16 전투기로 스파이스 2000 유도폭탄 2발을 발사하려다 목표 설정 실패로 두 번째 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했다. 그날 사격 대회 때는 중거리 유도무기 ‘천궁’이 발사 후 레이더와 유도탄 사이의 신호 불량으로 공중 자폭하는 일도 있었다. 작년 7월에는 주요 전력 구축함인 최영함이 작전 도중 3시간이나 해군 작전사령부와 통신이 끊기는 ‘실종’ 사태도 벌어졌다.

군사 전문가들은 “작전 수행 중에 있어선 안 될 사고들이 이어지는 만큼 기강 해이를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강릉비행장 현무 사고의 경우 남북군사합의 때문에 전방 사격장을 활용할 수 없었다고 해도 도심에 인접한 비행장에서 미사일 발사를 한 점은 지휘부의 안이한 판단과 경험 부족이란 지적을 받을 만하다”고 했다. 최영함 통신 두절 사고도 이종섭 국방장관과 김승겸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에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보고된 것으로 나타나 기강 해이란 지적이 나왔다.

한 예비역 육군 대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중장 이상 고위 장성 수십 명이 군복을 벗었고 이후 5년간 대화를 앞세운 대북 정책에 군이 젖어들면서 야전(野戰)에 강한 장성단 육성이 어려워진 점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예비역 장성은 “윤 대통령이 비례성 원칙을 넘어선 압도적 대응을 주문해도 훈련이나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군 지휘부가 허둥대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적재적소 인사와 작전 시스템 작동 측면에서 모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북 무인기 비행금지구역 침투 사태에서 보듯 군의 사후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갈이식 장성 인사가 능사는 아니란 지적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집권 후 고위 장성 인사를 2차례 실시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훈련과 작전 경험의 축적이 필요한 상황에서 책임 묻기에 급급한 인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전투를 준비하고 싸우면 이기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군 지휘부와 작전·무기 시스템에 대한 정밀한 검열을 통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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