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26일 북한 관영 매체들이 보도했다. 김정은은 전날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항일빨치산 결성 90주년 열병식 연설을 통해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둘째 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북핵의 ‘두 번째 사명’을 거론하며 육성으로 선제 핵 공격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 20~21일 친서를 교환한 지 나흘 만의 발언이었다.
김정은의 핵 사용 경고에도 이날 청와대와 국방부 등 정부는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열리지 않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우리에게 엄중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됐으므로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는 입장문을 냈을 뿐이다.
과거 김정은은 “우리의 핵무력은 미국이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2018년 1월 1일 신년사)이라고 했다. 북핵이 실제 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미국을 겨냥한 전쟁 억제용 임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선제적 핵 사용을 강조했고 그 대상은 한국임을 구체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한국이 북핵의 인질임을 공식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북한은 미 본토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17형을 잇따라 시험발사했고, 대남 타격용 전술핵 미사일도 쏘아올렸다. 이들 무기는 북한이 실전 배치한 다양한 대남·대미 타격 수단들과 함께 이날 열병식에 등장했다. 김정은의 핵 사용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무력시위였던 셈이다.
현재 한·미의 연합 방위 전력으론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북이 최근 시험발사한 KN-23·24 미사일과 장거리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에 대남용 전술핵을 얹어 ‘섞어쏘기’ 하면 패트리엇 PAC-3 미사일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천궁2 미사일로 구성된 한·미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