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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6·25 퇴각 때 종교인 1145명 학살”... 진실화해위 첫 확인
김명성 기자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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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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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시기 남한을 점령한 북한군이 기독교 신자 66명을 살해한 충남 논산 병촌교회의 순교자 기념비
6·25 전쟁 시기 남한을 점령한 북한군이 기독교 신자 66명을 살해한 충남 논산 병촌교회의 순교자 기념비

6·25 당시 남하한 북한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천주교인 1000명 이상을 집단 학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최근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팀에 의뢰해 진행한 ‘6·25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를 통해서다. 당시 광범위한 학살은 ‘종교 말살’ 정책을 펴온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지시로 이뤄졌다. 충남·전북·전남 지역 피해가 특히 컸다. 희생된 종교인은 기독교인 1026명, 천주교인 119명 등 총 1145명으로 집계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9월 26일 북한 당국은 “반동 세력 제거 후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한 달여간 전국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충남 논산 병촌교회에선 9월 27~28일 신자 16명과 가족 등 총 66명이 북한군과 공산당원들에게 살해됐다. “예수를 믿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한 뒤 공산당원들이 삽·몽둥이·죽창 등으로 구타하고 구덩이에 파묻었다. 젖먹이를 가슴에 안고 죽은 엄마도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15명의 신도가 학살당한 전북 김제 만경교회에선 10월 1일 공산군 퇴각 후 우물에서 남녀 교인들의 시신들이 발견됐다. 쇠망치로 뒷머리를 맞거나 죽창에 찔린 상태였다. 전북 정읍 두암교회에선 북한군이 10월 26일 교인들을 칼로 베거나 총살한 후 교회를 불태웠다. 우물에서는 말뚝이 박힌 시신도 발견됐다고 한다. 이렇게 22명이 살해당했다.

북한군은 9월 27일 전북 정읍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된 정읍교회 장로와 우익 인사들 167명을 불태워 죽였다. 150명은 고부 임석리 두숭산 폐광에서 집단 학살 후 매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영광 염산교회에선 10월 26일 ~ 12월 4일 77명이 학살됐다. 부모들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는 북한군의 협박에 모른다고 한 11세 어린이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경우도 있었다.

이 밖에도 전남 영광 야월교회·법성교회, 전남 영암 구림교회·매월교회 등에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몸에 돌을 달아 바다에 빠뜨리고, 공동묘지에 생매장하고, 산 채로 불을 지르는 등 온갖 잔인한 수법이 동원됐다.

연구팀은 북한군과 공산당원의 기독교인 집단 학살은 퇴각 과정에서의 일시적·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계획된 숙청이었다고 분석했다. “기독교를 불순 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려는 정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 도입에 앞장서면서 1920년대부터 ‘반공’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연구팀은 “이 때문에 북한과 남한 좌익 세력은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를 친미, 반공 세력으로 규정하고 말살 정책을 펼쳤다”고 했다. 6·25전쟁 시기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과 학살이 자행된 가운데 김일성은 1950년 7월 전국에 ‘전과 불량자, 악질 종교 등’을 처벌할 것을 명령했는데, 악질 종교에 기독교가 포함됐다고 한다. 보고서는 “기독교인의 숙청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지시 사항에 따른 것”이라며 “이런 지시에 의하여 인민공화국은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고 했다. 또 “이런 학살은 대부분 제대로 된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도 했다. 현장에서 ‘사냥’ 형식의 만행이 난무했다는 것이다.

◇보복보다 용서 택한 종교인들

연구팀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피해를 입었지만 보복보다는 용서를 택했다는 조사 결과도 내놨다. 66명이 희생된 병촌교회의 경우 집단 학살에 동조한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북 정읍 두암교회 경우도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어 같이 신앙 생활을 했다. 전남 임자면 진리교회에서 적대 세력에 피살당한 교인의 아들이 군인이 되어 보복할 기회를 얻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동네 이장이 돼 분열된 마을을 하나로 회복하는 데 노력한 경우도 있었다.

철원 장흥교회 서기호 목사는 9·28 서울 수복 후 적대 세력에 가족을 잃은 우익 청년들이 좌익과 유가족 100명을 처형하려 하자 이를 말렸다. 1951년 1·4후퇴 때 다시 돌아온 좌익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죽지 않은 것을 보고 우익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전세가 다시 바뀌어 좌익이 38선 이북으로 밀려나게 될 때 인민군은 서 목사를 체포 처형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연구팀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과거 문헌 자료와 관련자 증언을 수집하고,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해 연구를 진행했다. 일부 교단 자료나 개인 연구물 등이 있었지만 통계를 신뢰할 수 없었고, 또 목격자나 경험자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김광동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적대 세력의 기독교인에 대한 집단 학살과 종교 말살 정책을 국가기관이 공식 확인한 것이 이번 조사의 의미”라며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피해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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