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 출신인데 왜 북한 인권 문제에 힘을 쏟지 않는가. 북한 정권이 국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음식이나 병원 대신 핵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13일 전 세계 100여 국 인권 상황을 담은 700쪽 분량의 연례 보고서를 낸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케네스 로스(67) 사무총장이 전날 본지와 화상으로 만나 북한 인권 탄압 문제에 침묵하는 한국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날 보고서 한국 편에서 HRW는 국내 인권 상황뿐 아니라 인권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등을 지적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켰다”고 밝혔다. 로스 총장은 북한이 엿새 간격으로 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북한이 모든 정책과 전략을 군대에 쏟고 있으며, 이는 국민들을 탄압하지 않고서는 벌어지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로스 총장은 “경제 강국인 한국은 지위에 맞는 국제적 책임을 많이 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인권 외교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이 많은 투자를 한 미얀마·베트남·에티오피아·르완다 등에서 권위주의 정권의 인권 탄압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에 대해 지난해 미국·캐나다·일본 등 44국이 국제사회의 독립적 실태 조사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로스 총장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을 이유로 다음달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 외교 사절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단행하거나 신장 위구르산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장 위구르 인권탄압은 반인도적 범죄인만큼 주변국들이 강하게 부정해야 한다”며 “중국은 올림픽이라는 기회를 활용해서 부정적 인식을 씻어내려는 ‘스포츠 워시(sports wash)’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로스 총장은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권위주의 정권 지도자들이 선거 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악용해 정권 연장의 도구로 활용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좀비 선거’라고 정의했다. 그는 ‘좀비 선거’의 구체적인 예로 작년 유력 야당 정치인을 감금하고 치른 니카라과 대선과 러시아 총선, 민주 진영 후보의 출마가 전무했던 홍콩 입법회 선거 등을 예로 들었다. 로스 총장은 “특히 권위주의 정권은 소외감을 느끼는 계층을 겨냥해 각종 포퓰리스트 공약을 던지며 자신들을 위해 일할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에 칼날을 댔던 미국 연방 검사 출신이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낙마 위기로 몰아넣었던 콘트라 스캔들(미국이 적성국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판 대금으로 니카라과 좌파 정권을 전복하려 한 사건) 수사 팀의 일원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 최고 실력자들이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로스 총장은 “그 니카라과 좌파 정권이 지금은 ‘좀비 선거’로 독재 정권이 된 걸 지켜보니 착잡하다”면서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법 앞에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 법치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