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오빠를 제 가슴에 묻었습니다. ”

18일 오후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금자(69)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빠를 만나겠다는 일념에 ‘여행은 안된다’는 의사의 권유도 마다했던 김씨.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도착한 평양에서 김씨는 사촌언니인 금동(73)씨와 금녀(71)씨만 만날 수 있었다. 꿈에도 기다리던 오빠는 어디에도 없었다.

김씨는 북측 적십자 관계자들과 사촌 언니들을 붙잡고 “오빠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음날 김씨는 사촌 언니들로부터 “오빠가 2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는 대답을 들었다. “어디서 들었느냐”는 김씨의 질문에 언니들은 “함흥에 살고 있는 조카 딸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오열했다. 오빠가 원망스러웠다. “찢어질 듯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오빠는 어딜 간 거냐. ”

오빠의 사망소식에 절망한 김씨는 조카들만이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북한 측에 요청했다. 북한 측은 “아들은 행방불명이고 딸을 만나는 것도 곤란하다”며 김씨의 청을 거절했다. 김씨는 또 매달렸다.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오빠의 죽음을 확인해준 조카딸과 전화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며 “결국 가슴 아픈 소식만 듣고 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김씨는 함흥씨 사포구역에 친여동생 금복(65)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동생 역시 처녀 때 허리를 다친 것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18일 오전 슬픔에 잠긴 채 서울로 올 준비를 하고 있는 김씨는 더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오전에 북한 측 기자로부터 ‘오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당황해하는 김씨에게 남한 측 한 관계자도 “오빠가 살아계시니 안심하고 가세요. 다음에 또 기회 있어요”라며 격려해 줬다. 그러나 김씨는 오빠의 생존 소식을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목숨을 걸고 평양을 방문했지만 오빠도 조카들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오빠는 돌아가셨다. 이제 더 이상 평양에 남은 미련은 없다. ”

/송동훈기자 dh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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