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일(현지 시각) “북한에서 플루토늄 분리와 우라늄 농축 등 핵 프로그램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뒤 유엔총회에 참석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잇단 도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1.9.22/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1.9.22/연합뉴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IAEA 총회에서 북한 핵 개발에 대해 “명백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다. 북한은 핵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IAEA와 조속히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북한의 핵 시설 재가동 징후가 드러나자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에리카 바크스러글스 미 국무부 국제기구 담당도 유엔총회를 앞두고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이런 활동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다른 국가도 제재를 강력히 집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고도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미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 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종전 선언을 다시 제안했다. 작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를 여는 문”이라며 제안한 종전 선언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종전 선언을 위해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며 “종전 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 국제사회가 한국과 함께 북한에 끊임없는 협력의 손길을 내밀어 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지구 공동체 시대에 맞는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조속한 추진,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등을 통한 감염병·자연재해 대응을 촉구했다. 내년 5월 임기를 마치는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언제나 대화와 협력으로, 남북 간, 북·미 간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한다”며 “상생과 협력의 한반도를 위해 남은 임기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해는 남북 유엔 가입 30주년으로 북한도 함께 종전 선언에 합의해서 좋은 모멘텀을 마련하자는 메시지”라고 했다.

다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문제를 짧게 언급했고 뉴욕을 방문한 문 대통령과 만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해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모색한다”며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후 호주⋅영국 정상 등과 연달아 만났다. 이어 24일 워싱턴에선 쿼드(Quad) 4국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등을 만난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의 2박 3일 일정 중 영국⋅베트남⋅슬로베니아 정상과만 양자 회담을 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제는 전통적인 4강 외교도 중요하지만 다자외교로 국익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은 이미 5월에 워싱턴에서 열렸기 때문에 만나지 않은 정상을 먼저 만난다는 게 미국 측 입장이었다”고 했다. 한국전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 참석을 위해 하와이 호놀룰루를 찾은 문 대통령 부부는 23일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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