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발생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 가운데 북한에 대규모 탄소 포집·저장(CCS) 지하 설비를 설치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15일 나타났다. 우리가 배출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북한에 묻는 방식으로 탄소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또 ‘절대농지와 저수지 주변 등 농업진흥지역을 제외한 농지의 5%’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겠다던 애초 방안이 ‘농업진흥지역을 제외한 전체 농지’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래 정치·외교의 급변 상황과 식량 안보 등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비현실적 계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지난 5월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본지가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을 통해 입수한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세부 산출 근거 자료’(이하 ‘근거 자료’)에는 62페이지에 걸쳐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들이 검토한 탄소 중립 시나리오 산출 근거가 상세하게 담겼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5일 공개한 ‘탄소 중립 시나리오 위원회 초안’에서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을 통해 한·중·일 공동수역 등 ‘해외 저장소’에 10억t 탄소를 저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 저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작성된 ‘근거 자료’를 보면 이 해외 저장소에는 한·중·일 수역(4억t) 등 외에도 ‘북한(4억t)’이 명시돼 있다. 이 같은 ‘북한 CCS’ 계획은 탄소중립위원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면적의 약 10배를 태양광으로, 국토 면적의 9%에 해당하는 연안을 해상 풍력발전으로 뒤덮겠다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방안도 비현실적인 숫자 맞추기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 국책 연구기관이 중심이 돼 작성한 정부 시나리오는 우리나라 국토 면적을 감안할 때 최대한 동원 가능한 ‘태양광 잠재량’을 549.9TWh(테라와트시), ‘육상·해상 풍력 잠재량’을 186.4TWh로 각각 산정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2020 신재생에너지백서’를 통해 태양광 잠재량은 495TWh, 풍력 잠재량은 171TWh가 최대라고 밝혔다. 불과 6개월 만에 10%가량 잠재량을 늘려 잡은 것이다.

 

‘근거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절대농지와 저수지 등 농업진흥지역을 제외한 전체 농지를 대상으로 영농형 태양광을 보급하기로 했다. 영농형 태양광은 설치한 태양광 패널 아래 논밭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태양광 지지대와 전력 연결을 위한 전신주 설치 등으로 인해 인근 논밭의 농사까지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태양광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서울 면적의 10배 이상, 즉 전체 농지 면적(156만ha)의 약 40%에 달하는 땅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새만금 태양광(2.1GW)을 포함해 ‘저수지 면적의 10%, 담수호 면적의 20%’를 태양광으로 덮겠다는 구상도 포함됐지만 현실성은 의문이다. 수면의 10~20%까지 태양광으로 덮이면 수생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과 경제성 모두 없어 보인다”며 “정부가 당당하게 세부 산출 근거를 공개하고 지금이라도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단체 인사들이 중심이 된 탄소중립위가 여러 문제점들에 눈감고 ‘신재생 에너지 최대 71%’ 목표를 밀어붙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근거 자료에는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확대 등에 따라 전력 계통 안정화 설비 보강이 필요하다”면서 ESS(전력저장장치) 도입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ESS는 전력을 저장하는 커다란 배터리다. 태양광은 날씨가 궂은 날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때에 대비해 태양광은 생산한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써야 하는 게 필수다.

문제는 ESS 설치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 태양광발전소인 솔라시도의 경우 태양광발전 용량은 98MW(메가와트)인데 총 20개 동에 분산된 ESS 발전 단지 용량은 306MW에 달한다. 솔라시도 사업비 3440억원 중 36%(1238억) 가까운 돈이 ESS에 들어갔다. 그러나 탄소중립위는 “30년 후 비용 추산을 현재 시각으로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ESS 건설 부지나 비용 검토에 대해선 별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 5일 ‘에너지믹스 보고서’에서 “태양광·풍력 등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50~80%까지 달성하려면 전기 소비자인 국민은 연간 41조~96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ESS 설치 비용만 300조원을 넘길 것”이란 전문가(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 분석도 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탈원전에 따른 비용이 너무 크게 나올 것 같으니까 정부가 시나리오에서 비용 분석을 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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