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현무-4 수십 발이면 북한 평양 지휘부를 초토화할 수 있다”며 “한미 미사일 지침이 폐기돼 중국 등 주변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 자산 증강 기회를 얻게 됐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현무-4 수십 발이면 북한 평양 지휘부를 초토화할 수 있다”며 “한미 미사일 지침이 폐기돼 중국 등 주변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 자산 증강 기회를 얻게 됐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임호영(예비역 육군 대장)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현 정부 출범 후 한미연합훈련이 축소돼 한미동맹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해왔다. 그런 그와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던 지난 23일 전화 통화가 됐다. 그는 “한국군 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에 이어 사거리 제한을 없애는 미사일 지침 폐기에 한미 정상이 합의했다는 데 모처럼 기쁜 소식”이라고 했다. 임 전 부사령관은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있던 2016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대량응징보복(KMPR) 계획을 수립했다. 북한 평양 지휘부를 타격하는 미사일 전력 증강이 핵심이었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그는 “현 정부 들어 대북 억지력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미사일 지침 폐기로 응징·보복 역량을 되살릴 기회를 잡았다”며 “이를 기화로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응징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확보하는 등 장거리 탄도미사일 전력에서 한국군에 앞서 있다. 하지만 임 전 부사령관은 “한국군은 요격 미사일 개발에 치중해왔기 때문에 정밀도 등에서 북한에 앞서 있다”며 “당장 핵무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없어져 북한은 물론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맞대응 능력을 확보할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박정희, 비밀리에 미사일 개발 착수

―미사일 지침 폐기가 갖는 의미가 뭔가.

“미사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핵과 함께 개발에 나선 한국군의 핵심 전략 자산이었다. 그런데 1978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가 첫 국산 탄도미사일 ‘백곰’ 시험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거리 180㎞짜리 단거리 미사일이었는데도 미8군 사령관이 개발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은 ‘사거리 180㎞, 탄두 중량 0.5t 이상은 개발하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이게 미사일 지침이 됐다. 그 족쇄를 이번에 풀게 된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왜 미사일 개발에 나섰나.

“1970년대 한반도는 안보적으로 불안정했다. 1968년 1·21 청와대 기습 사건을 시작으로 북한의 위협이 증가했고 주한 미7사단 철수, 월남 패망,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론 등 외부 요인까지 불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은 핵·미사일 개발을 결심하게 됐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 서거로 개발이 중단됐다. 미국이 탐탁지 않게 보는 상황에서 후임 정권이 개발을 이어가긴 어려웠다. 그나마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미사일 개발이 재개됐다.”

―그 시기 북한도 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했는데.

“김일성도 6·25 남침 때 해·공군 지원 약속을 깬 소련 스탈린에 대한 배신의 기억이 있었다. 그것이 독자적 전력 강화를 재촉했을 것이다. 결국 북은 3대 세습을 거치면서 핵·미사일 개발을 진전시켰다.”

미사일 지침 42년만에 폐기

―미국은 한국 미사일 개발을 왜 견제했나.

“미국은 한국인의 통일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평화 통일’을 지향하지만 미국은 한국인의 통일 의지가 자칫 군사적 모험주의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해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군의 미사일 전력 증강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1979년 10월 시작된 이후 2001년 1차 개정을 통해 사거리 300㎞, 탄두 중량 500㎏으로 확장했다. 이후 2012년 2차 개정을 통해 최대 사거리 800㎞는 탄두 중량 500㎏ 등 사거리별로 탄두 중량에 제한이 있었다. 2017년 3차 개정에서 사거리는 800㎞로 제한하되 탄두 중량 제한은 해제했다. 이어 2020년 7월엔 4차 개정에서 우주 발사체에 대한 고체 연료 사용 제한이 해제됐고 9개월 만인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지침이 폐지됐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2016년 9월 9일 임호영 당시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이 미사일 전력을 이용한 응징·보복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2016년 9월 9일 임호영 당시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이 미사일 전력을 이용한 응징·보복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사일 지침 폐지에 42년이 걸렸는데.

“1차 개정에 이르기까지 22년, 이후 2차 개정에 11년, 3차 개정에 5년, 4차 개정에 3년이 걸렸다. 개정 주기가 점점 짧아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 지침이 시작될 당시는 미·중 밀월 시대였지만 이후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패권 전쟁이 심화하면서 역으로 한국 미사일 전력 증강 공간이 열린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한국의 미사일 전력 증강에 동의했다는 뜻인가.

“미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중(對中) 미사일 망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2019년 INF(중거리핵전력) 조약에서 탈퇴할 때까지 단거리 미사일을 많이 만들지 않았다. 정치적 여건상 한국에 미국 미사일을 배치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사일 전력 증강을 하는 걸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거다.”

우리 군은 2016년 9월 9일,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이른바 ‘3축 체계’를 발표했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날이었다.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됐고, KMPR의 핵심은 미사일 전력 증강이었다. 당시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이었던 임 전 부사령관은 당시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무기로 위해를 가할 경우, 북한의 전쟁지도본부를 포함한 지휘부를 직접 겨냥해 응징·보복할 것”이라고 했다.

―3축 계획을 수립한 배경이 뭔가.

“북한이 2016년 1월 4일 4차 핵실험을 했다.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선전한 실험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B-52 등 미 전략 자산이 한반도 상공에 왔다가 가는 무력 시위 외에 별다른 대응 수단이 없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합참 전략기획본부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3축 체계 연구에 들어갔다.”

北 5차 핵실험에 군 지휘부 “군복 입은 장성이 응징 계획 발표하라”

―KMPR의 목표는 뭔가.

“북한은 사실상 ‘평양’과 그 외 지역으로 구분된다. 특히 평양 능라도를 중심으로 조성된 북한 지휘부가 핵심이다. 북이 핵·미사일을 한국을 향해 쓸 조짐을 보이면 탄도미사일을 퍼부어 평양 지휘부를 초토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 날 발표했는데.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직후 연구에 들어가 그해 4월 3축 계획을 완성했다. 청와대와 군 수뇌부 간 협의 과정에서 북이 다시 핵실험을 하면 발표하는 걸로 조정됐다. 북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한 후 3년 주기로 실험을 해왔다. 그런데 2016년엔 4차 핵실험 8개월 만인 9월에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날 곧바로 발표했다.”

―직접 발표했는데.

“우리 군의 강력한 응징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넥타이 맨 국방부 대변인이 아니라 군복 입은 현역 장성이 발표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내 인상도 브리핑에 알맞다는 분위기였다. 보다시피 험하지 않은가.”

―KMPR 계획 수립 당시 미사일 전력으로 평양 초토화가 가능했나.

“실무 검토 결과 북 지휘부 밀집 지역을 초토화하려면 1발당 탄두 중량이 2000㎏ 정도는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당시 탄두 2000㎏짜리는 사거리가 300㎞로 제한된 상황이었지만 향후 사거리 제한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현무-4 개발도 진행 중이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우리 군이 4일 오전 동해안에서 사거리 300㎞인 현무-2A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사거리 300㎞인 현무-2A 탄도미사일./국방부

미사일은 효율성·가성비 높은 전략 무기

―미사일 사거리 목표는 어느 정도였나.

“북한 미사일 주전력이 자리 잡은 후방 지역까지 타격하려면 800㎞ 정도는 돼야 한다.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이런 목표로 개발에 들어갔고 이게 결실을 보아 세상에 나온 게 작년 7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현무-4다.”

현무-4는 500㎏의 탄두 중량을 실을 수 있는 기존 ‘현무-2’에 비해 훨씬 크고 무거운 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임 전 부사령관은 “시험 발사에서 현무-4가 표적 깃발에 정확히 꽂혔을 정도로 정확성이 대단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무-4를 둘러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도와 강력한 파괴력을 갖췄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란 것이다.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개발할 수 있을까.

“우리 기술력이면 탄두 중량을 10t 가까이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사거리도 2000~3000㎞급 중거리 미사일이면 중국 등 주변국을 견제할 수 있다.”

―KMPR에서 주변국 견제도 염두에 뒀나.

“북한 핵 위협이 해소되면 그 다음은 주변국이 잠재적 위협이 되지 않겠나. 당연히 주변국 위협에 대한 맞대응 역량 강화를 상정했다.”

―주변국에 대한 억지력 확보에 미사일이 왜 유효한가.

“우리 주변국들은 전차, 전투기, 함정 등 대칭 전력이 우리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미사일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 병력 자원이 부족해지고 복무 기간이 짧아진 상황에서 미사일은 운용 효율성과 가성비 면에서도 우수하다.”

―일부에선 미사일 지침 폐지를 기화로 전시작전통제권도 빨리 가져오자고 하는데.

“한미연합사는 양국 대통령이 동의한 가운데 양국군 합참의장이 내린 지침에 따라 작동한다. 데프콘 3(전쟁 상황 선언 단계)가 발령됐다고 모든 한국군 전력이 연합사령관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미국은 전작권을 빨리 가져가라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미·중 패권 전쟁이 벌어지면서 신중해진 분위기다. 이럴 때 전력 증강을 착실히 추진하고 준비가 됐을 때 전환해야 한다. ‘상대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는 평범한 안보 논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임호영

1959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 영등포고와 육군사관학교(38기)를 졸업했다. 보병 소위로 임관해 장성 진급 후 육군 제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등을 거쳐 6사단장,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차장 등을 지냈다. 2014년 중장으로 진급해 육군 5군단장과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냈고 2016년 대장으로 진급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내다 2017년 8월 전역했다. 연합·합동 작전과 전력·전략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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