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정상이 대북 정책에서 합의한 내용들에 대해 “기대를 완전히 충족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가 포함되고 ‘미국도 남북 대화·협력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넣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였고, 어렵게 미국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 전문가들은 23일 “미국이 한국 쪽으로 반보(步) 다가오긴 했다”면서도 “외교로 북한 문제를 풀겠다는 미국 입장을 재확인한 수준이고 구체적인 비핵화 해법도 없다”고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유성옥 대안과진단 연구원장은 “오히려 북한은 공동성명에 제재의 해제 대신 완전한 이행이 언급되고 인권 문제까지 포함된 것에 신경이 곤두섰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외교 당국은 회담 준비 과정에서 미 측에 대북 제재 완화를 건의했지만, 미 측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우회로’를 찾는 데 집중했다고 정통한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결국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를 존중한다’는 표현을 넣고, 남북 대화·협력에 대한 미 측의 지지를 받아내는 쪽으로 목표를 수정했다는 것이다.

미 측은 문재인 정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대신 공동성명에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이란 문구를 포함했다. 대화·협상을 위해 제재를 완화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도움만 줬던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이 선호하는 톱다운 방식(하향식)의 회담에 대해서도 “그 사람(김정은)의 말만 갖고 할지 안 할지 판단하지 않겠다” “(비핵화에 대한) 환상도 없다”며 사실상 일축했다.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협력에 지지를 표명했다’는 표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코로나 방역, 기후변화, 인도주의 등을 남북 협력 추진 분야로 꼽았다. 하지만 제재가 일부라도 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이 교류·협력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방역·인도 지원 등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본질적 사안’이라며 직접 걷어찬 사안이기도 하다.

공동성명에 ‘(한미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도 정부로선 부담스럽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 입장에선 최고존엄 모독으로 간주하는 인권 문제를 언급한 것이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 반영 등을 압도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북한은 23일까지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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