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1일 오전 서해상으로 단거리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사실이 24일 미 언론들의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우리 군은 발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포착했으나 공개하지 않다가 외신 보도가 나온 뒤에 확인했다. 향후 전술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데다 우리 함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북의 도발을 우리 국민은 사흘 뒤에 외신을 통해 처음 접한 것이다.

북한이 노동신문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 지대함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9일 보도했다. 사진은 무한궤도형 이동식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순항미사일의 모습./노동신문 연합뉴스

북한이 노동신문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 지대함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9일 보도했다. 사진은 무한궤도형 이동식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순항미사일의 모습./노동신문 연합뉴스

◇군은 정황 포착하고도 미공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61일 만에 첫 무력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미 워싱턴포스트, 로이터 등은 동시다발적으로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미 정부가 비공개 정보를 언론을 통해 알리는 ‘의도적 리크(누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 정부가 우회적으로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측의 ‘누설’이라면 한국에 대한 견제 또는 불만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기대감 등이 있어서 비공개가 좋았겠지만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북한 단거리 순항미사일(추정) 발사

북한 단거리 순항미사일(추정) 발사

군은 지난해 4·15 총선 전날인 14일 강원도 문천 일대에서 북한이 동해상으로 단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는 그대로 공개했었다. 또 지대함(地對艦) 미사일 등 순항미사일은 물론 240㎜ 방사포(최대 사거리 70여㎞) 발사를 공개한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굳이 비공개를 유지한 것과 관련,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동향과 관련해 모든 걸 공개하진 않는다”고 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음 달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북한과 최대한 마찰을 피하려는 정부 정책 기조 등을 감안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군은 이날 북 순항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아님을 강조했고, ‘도발’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북, 도발 수단·지역·시기 고심한 듯

북한이 발사한 순항미사일의 종류와 비행 거리 등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북 열병식에도 등장한 금성-3호(Kh-35) 계열의 지대함 순항미사일(최대 사거리 200여㎞) 또는 그 개량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미사일은 수면 가까이 빠르게 날 수 있어 요격이 어렵다. 북한이 지난해 10월과 지난 1월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중·장거리 순항미사일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소식통은 “신형 중·장거리 순항미사일은 사거리가 1000㎞ 이상일 텐데 중국과 가까운 서해상에서 시험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평양 주택 1만 가구 착공식에 간 김정은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단상 가운데 손 흔드는 사람)이 23일 수도 평양에 주택 1만 가구를 짓는 착공식에 참석해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우리 수도 건설 역사에 또 하나의 뜻깊은 이정표를 새기는 영광을 지니게 된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평양 주택 1만 가구 착공식에 간 김정은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단상 가운데 손 흔드는 사람)이 23일 수도 평양에 주택 1만 가구를 짓는 착공식에 참석해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우리 수도 건설 역사에 또 하나의 뜻깊은 이정표를 새기는 영광을 지니게 된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은 바이든 미 행정부 들어 첫 도발을 감행하면서 나름대로 수단·지역·시기를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리 위반 대상이 아닌 순항미사일을 선택했고, 도발 지역 역시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해가 아닌 서해였다. 시기 또한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과 미·중 회담이 끝난 뒤인 21일이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은 곧 마무리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를 보고 추가 도발 수위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장사정포 혹은 단거리 미사일 등으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미·일 안보실장은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다음 주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미측이 대북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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