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 유린·탄압을 규탄하는 유엔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한국 정부가 3년 연속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반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인권·민주주의’를 내세우며 3년 만에 인권이사회에 복귀해 공동 제안국에 이름을 올렸다.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한·미 엇박자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유엔인권이사회는 23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유럽연합(EU)이 초안을 작성한 이번 결의안엔 미국·일본을 비롯한 40여 나라가 참여했다. 한국은 과거 공동 제안국에 계속 이름을 올렸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미·북 대화가 시작되자 2019년부터 공동 제안국에서 빠지고 최종 합의 채택 과정에만 참여하고 있다.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해 북한이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공동 제안국 불참, 합의 채택 참여'를 “예년과 같다”고 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2019년과 지난해의 경우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인권이사회를 탈퇴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을 전면에 내세우고 중국·러시아 등에 맞서 동맹 규합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과 관련한 한국의 소극적 대응은 미국과의 마찰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 미국·EU·영국·캐나다 등은 전날 중국 신장 위구르 인권 침해를 규탄하면서 제재를 발표했다. EU는 여기에 더해 이날 정경택 북한 국가보위상, 리영길 사회안전상, 중앙검찰소 등을 인권유린을 이유로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지난주 서울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박2일 방한 기간 내내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권유린”이 있다고 북한을 비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와 관련, “(인권보다) 우선 해결해야 될 일이 많다”고 한 발 뺐다.

 

올해 북한 인권결의안은 ‘북한에서 자행되는 제도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유린'을 규탄했고,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과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와 추가 제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여기에 올해 처음으로 미 송환 국군 포로와 그 가족들의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해 9월 북한의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국경에서의 과잉 폭력 자제를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이와 관련,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이 미국 외교 정책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며 “한국이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동안 미국이 (북한 인권에) 단호히 대처하기로 할 경우 한미 관계에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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