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4일(현지 시각) UNHRC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계속되는 시리아와 북한의 인권 침해 등을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우려되는 문제를 거론하는 결의안을 지지하기 바란다”고 했다./AF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4일(현지 시각) UNHRC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계속되는 시리아와 북한의 인권 침해 등을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우려되는 문제를 거론하는 결의안을 지지하기 바란다”고 했다./AFP연합뉴스

미국이 3년 만에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복귀한 자리에서 “인권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두겠다”며 북한 인권 결의안 통과를 촉구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인권 문제를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북한 인권을 제대로 문제 삼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북한 인권을 놓고 한·미 간 인식차와 불협화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4일(현지 시각) UNHRC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계속되는 시리아와 북한의 인권 침해 등을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우려되는 문제를 거론하는 결의안을 지지하기 바란다”고 했다. 미국은 2018년 인권이사회에서 탈퇴했다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재가입했다. 복귀 일성(一聲)으로 ‘북한 인권'을 주요하게 거론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22일에도 “북한의 지독한 인권 기록과 폐쇄된 국가(북한) 내 인권 존중을 촉진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발표한 별도의 성명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정책 중심에는 민주주의 수호와 인권 보호가 있다”며 “불의와 폭정(injustice and tyranny)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을 콕 집어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대북 관계에 있어서도 인권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펼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됐다. 그는 “미국은 인권이 보호되고 인권 운동가들이 기려지며 인권 침해를 자행한 이들이 책임을 지게 되는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고도 했다.

북한 軍수뇌부 인사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차수(원수와 대장 사이) 계급으로 승진한 권영진 총정치국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군 수뇌부 인사를 단행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軍수뇌부 인사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차수(원수와 대장 사이) 계급으로 승진한 권영진 총정치국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군 수뇌부 인사를 단행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미국이 ‘북한 인권'을 본격적으로 이슈화함에 따라 취임 초부터 남북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해온 문재인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UNHRC는 지난해까지 18년 연속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북한 내 인권 유린 실태와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책임자를 추궁하는 내용이 담긴다. 해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이 대거 공동 제안국에 이름을 올렸지만 우리 정부는 재작년과 작년 모두 불참했다. 다음 달 상정되는 올해 결의안에도 불참이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블링컨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결의안 이행을 촉구하면서 정부 부담이 커지게 됐다. 미국이 다자주의에 복귀한 상징적인 자리에서 강조한 이슈에 한국이 불참하면 국제사회의 컨센서스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자유·민주 진영의 큰 흐름에서 소외되는 모양새가 연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공동 제안국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인권 문제 방관이 이어지면서 미국 등 우방에서는 우려와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 정세의 민감성 등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5년이 됐지만 북한인권재단 출범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북한인권대사 자리도 3년 반째 공석(空席)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도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했다. 미국과 유럽 여러 국가들이 이번 회기에서 주요하게 거론한 신장 위구르족 탄압 같은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국장은 24일 “최근 귀순한 북한 남성이 강제 북송(北送)을 우려해 한국 초소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점은 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무시하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귀순자가 북송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김정은과 그 정권은 아마도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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